윤용수의 에세이


 

 

올라가는 길은 시의 거리다. 시비 앞에서 시를 감상하는 것도 좋다.
이은상의 ‘가고파’, 김용호의 ‘오월이 오면’, 이원수의 ‘고향의 봄’, 천상병의 ‘귀천’, 김태홍의 ‘관해정에서’, 박재호의 ‘간이역’, 정진엽의 ‘갈대’, 권환의 ‘귀향’, 이광석의 ‘가자! 아름다운 통일의 나라로’, 김수돈의 ‘우수의 황제’, 김세익의 ‘석류’, 이일래가 작사·작곡한 동요 ‘산토끼’ 등이 있다.
산호공원 정상에서 김세익의 석류를 읽으며 잠시 쉬어본다.

누나야/ 석류꽃이 피었습니다. 
푸르듯 붉은 꽃이/ 가지마다 피었습니다.
오월 달 맑은 날에/ 잊은 듯이 피었습니다.
누나가 가신 날에/ 잎사귀마다 그늘지어/ 하늘가 높은 곳에/ 몸부림치며
그때 같이/ 석류꽃이 피었습니다.

지금은 석류꽃이 피는 계절이 아니라 석류가 상사화처럼 빨갛게 익어가는 계절이지만, 나도 부천에 있는 누나가 그리워진다.
산호공원 정상에 서면 마산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가고파의 바다와 무학산이 한걸음에 달려온다.
꽃무릇이 있는 아랫길로 향한다.
무성한 숲속에서 안타까움이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어깨를 맞대며 오열하는 진홍빛 상사화가 있다.
여기에 와서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 아름답다고 아는 척 하지도 말며, 돌아보지 않는 사랑이 진실하다고도 말하지 말라. 만질 수도, 안을 수도, 포갤 수도 없는 사랑을 왜 시인들은 아름답다 했을까.
젊은 스님의 붉은 넋이 한 번 더 아파할지도 모른다.
수선화과에 속하는 다년생초, 오늘도 잎은 꽃을, 꽃은 잎을 생각하며 울다가 울다가 잠이 드는 상사화.
바라보기만 하는 사랑도 상사화 앞에서는 사치다.
여보! 여기가 더 좋다. 꽃무릇 사이에 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과 사람들,
시퍼런 칼날로 살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고, 장날처럼 붐비며 부대끼며 살아도 우리는 이런 상사화가 있기 때문에 가을에는 더욱 사랑을 하나보다.
이해인의 ‘상사화’다.

아직 한번도 당신을 직접 뵙진 못했군요. 기다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기다려 보지 못한 이들은 잘 모릅니다. 좋아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서로 어긋나는 안타까움을 어긋나보지 않은 이들은 잘 모릅니다. 날마다 그리움으로 길어진 꽃술내 분홍빛 애틋한 사랑은 언제까지 홀로여야 할까요? 침묵 속에서 나는 당신께 말하는 법을 배웠고 어둠 속에서 위로 없이도 신뢰하는 법을 익혀 왔습니다. 죽어서라도 당신을 만나야지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함을 오늘은 어제보다 더욱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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