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국가적 의제에도 시류가 있고, 사회적 이슈에도 유행이 있다. 당연히 공동주택 생활에도 화제의 흐름이 있다. 현재 공동주택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이슈는 ‘반려견’이다.
서울의 한 아파트 입주민이 다른 입주민이 키우던 개에 물려 사망했다. 이 일이 크게 부각된 건 피해자가 유명 음식점 대표란 것 외에도, 개 주인의 가족이 유명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이 연예인과 가족을 비난하는 글이 쇄도했다. 그 개가 평소에도 사람들을 자주 물었다는 것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관할구청으로부터 5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큰 논란이 일었다.
사람들은 당연히 두 집안 간에 사생결단의 이전투구가 펼쳐질 것으로 봤다. 언론에서도 피해자 유족이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기에 그야말로 ‘개싸움’이 될 것이란 걸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건의 흐름은 전혀 의외의 방향으로 진행됐다. 며칠 후 피해자 유가족이 “법적 대응을 하지 않겠다”며 용서의 태도를 보였다. 피해자의 아들은 한 인터뷰에서 “엄마가 살아 돌아오실 수만 있다면 10년, 20년도 싸울 수 있다. 과연 어머니가 그런 싸움을 원하실까”라며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조용히 애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이것을 개인 간의 싸움으로 비추기보다 제도 마련과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을 낳는 계기로 만들어 줬으면 한다”고 했다. 이 입장은 유가족이 함께 내린 결정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놀랐다.
내가 키우는 개를 다치게 만들어도 참지 못하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가족을 물어 죽게 만든 개와 주인을 용서하다니.
피해자 유족이 놀라울 정도로 성숙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임에 따라 ‘개’를 둘러싼 논쟁 역시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개를 안락사 시킬 것이냐”하는 단편적 문제를 떠나 “반려견을 키우려면 주인이 먼저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개에 물려 병원에 이송된 환자 수가 1,000명이 넘는다. 개 물림사고가 꾸준히 증가해 2015년 월 평균 153.4명의 환자가 병원에 이송됐지만, 지난해엔 175.9명으로 늘었다.
길을 가던 고교생이 목줄 없는 개에 물렸고, 과수원 조사를 나간 농산물품질관리원 조사원도 사냥개에 물렸다.
‘남의 개’가 아닌 ‘우리 개’에 물려 죽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얼마 전 1살 아기가 집에서 키우던 진돗개에 목을 물려 숨졌고, 75세 할머니도 마당에서 키우던 개에 물려 숨졌다.
‘해 질 녘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을 프랑스에선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른다. 상대가 ‘선’인지 ‘악’인지 구분할 수 없는 혼돈의 상태를 은유하는, 살벌하면서 시적인 표현이다.
개의 조상은 늑대. 모든 개는 늑대로부터 나왔다. 그 야성의 맹수와 인간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조금씩 친해지다가 결국 함께 살게 됐다. 그들은 그렇게 늑대를 버리고 개가 됐다.
진화와 개량을 거듭해 지금은 인간의 보살핌을 받지 않고는 스스로 살아가기 힘든, 작고 약한 개의 종류도 많다.
크기와 종류를 떠나 모든 개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모든 개는 인간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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