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남동구 논현주공14단지 등대마을

 

인천 남동구에는 평범한 시민들과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 그리고 일제 강점기 시절 사할린 강제징용으로 러시아에서 거주하다가 수십 년이 지나서야 노구를 이끌고 대한민국으로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 이렇게 일상에서 마주치기 쉽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 활기차게 살아가는 아파트가 있다.
인천의 해산물 명산지로 이름난 소래포구, 그 소래포구에서 1㎞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논현 주공14단지 등대마을아파트. 신도시답게 주변은 온통 아파트 숲이고, 단지 한 쪽 옆으로 영동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다. 그 큰 길을 건너가면 염전과 갯벌이 펼쳐지고 염생식물이 가득해 자연체험학습장으로도 유명한 소래습지 생태공원이 나온다. 도심 속의 아파트지만 편의성에 천혜의 자연환경까지 갖춘 최고의 생활환경을 자랑할 만한 아파트다.
서창원 관리사무소장은 지난 2015년 2월 1일 이 단지로 부임했다. 그는 지난날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인천시회 회장으로 역임하며, 주택관리사와 관리종사자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5년간의 쉼 없는 활동을 마친 후 초연하게 다시 관리현장으로 돌아왔다.
회장에 당선돼 협회 활동을 하기 전까지 일했던 단지는 송도신도시, 회장직을 내려놓은 이후 부임한 곳은 논현신도시. 그의 열정과 활동력에 딱 들어맞도록 역동적인 신도시에서만 일하는 것 같아 묘한 궁합이 느껴진다.
그가 처음 부임했을 때, 마치 단지 특성을 반영이라도 하듯 심각한 문제가 가로놓여 있었다. 그것은 평생 단 한 번의 외국생활도 해 본 적이 없는 국내파(?) 어르신들과 수 십 년간 사할린에서 생활하다 귀국한 해외파(?) 어르신들 간의 반목. 문화적 이질감으로 사할린 어르신들이 단지 내 경로당에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건물동 뒤편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일상 업무에 쫓겨 관심을 못 갖거나, 갖더라도 해결할 엄두를 내지 못할 업무 외적인 일이었지만, 서 소장에겐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국내파에 밀려나 경로당엔 얼씬도 하지 못하고, 한 겨울 엄동설한에도 밖에서 서성이기만 하는 사할린 귀국 동포들이 안쓰러웠다. 그들은 굳이 싸우거나 항의할 의향도 없어 보였다. 2006년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이니 자그마치 10년이나 묵은 ‘적폐’가 아닐 수 없었다.
서 소장은 바로 두 진영의 화합과 친목도모를 위해 나섰으나, 곧 문화적 이질감과 정서적 거부감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강제로 뒤섞어 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서 소장은 보다 높은 차원의 아이디어를 강구했다. 관할구청과 구의회에 단지 상황을 알리고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공무원과 구의원 등 수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호소한 끝에 마침내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단지 앞 상가 2층을 임대하고 리모델링에 착수해 ‘사할린 경로당’을 개소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천막생활을 전전하던 고령의 사할린 동포들에게 여가활동 및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포근한 둥지가 마련됐다. 운영 경비는 지자체 보조금과 아파트, 복지단체의 지원금 등 여러 곳에서 보내온 온정의 물결 덕분에 어렵지 않게 해결하고 있다. 사할린 경로당이 개소하던 날, 단지 경로당의 한국 어르신들도 기꺼이 찾아와 축하의 인사와 선물을 건넸다. 마침내 국내파와 해외파의 진정한 통합이 완성된 것이다.

등대마을 한쪽 옆 넓은 마당엔 나무와 꽃, 벤치 등이 조성돼 있다. 이름하여 ‘통일동산’
인천시 남동구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북한이탈주민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마당 이름에 민족의 염원을 담아 명명한 것이다. 그러나 통일동산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상태였다. 바로 옆 등대마을과는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반대편은 넓은 차도가 있어 주민들이 다가가기 어려웠다. 말로만 ‘통일’을 외치는 현실만큼이나 ‘통일동산’은 관심 밖의 먼 존재였다. 서 소장은 이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아무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방치돼선 안 된다고 생각해 구청 공원녹지과에 출입문 개설을 공식 요청했다. 구청에서도 서 소장의 건의가 합당하다고 판단, 기존 울타리에 문을 만들고 사람들이 편히 드나들 수 있도록 산책로를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열린 통일동산 기념식엔 남북주민 120여 명이 참석해 식목행사를 하고 간소하게 잔치도 열었다. 작은 아파트 단지에서 미래의 아름다운 남북통일을 이뤄낸 것이다.
등대마을에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행복카’ 주차장이었다. 요즘 한창 뜨기 시작한 ‘카셰어링’이 아파트에서도 진행되고 있었다니! 기자에겐 놀라운 일이었지만 주민들에겐 이미 친숙한 차량공유 서비스였다. 휴대폰 앱을 통해 예약만 하면 복잡한 절차 없이 이용할 수 있고, 비용은 교통카드로 저렴하게 계산한다. 서 소장 역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면서 업무상 필요할 때 ‘행복카’를 이용하는데 매우 편리하다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서창원 소장은 부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 LH우수관리소장 표창을 수상했다.

그만큼 단기간에 해낸 일들이 무척 많다. 30여 명으로 구성된 ‘새암봉사회’를 발족시켜 주민들끼리 스스로 돕는 문화를 만들었고, 장애인을 배려해 2개 기관과 MOU를 체결, 매 반기마다 3년째 휠체어, 스쿠터 등에 대한 위생세척 및 무상 수리를 실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효도관광, 복날 삼계탕 나눔, 어린이날, 아나바다 알뜰장터, 숲가꾸기, 통일장마당, 환경개선, 교육 및 계몽, 반찬만들기와 판매수익 기부, 작은 도서관, 건강걷기 모임, 아침 기공체조, 풍물강좌, 뜨개질 모임, 거버넌스와 층간소음관리위원회 구성 등등…. 이름만으로도 소개할 거리가 너무나 많지만 이 일련의 행사들은 다른 단지에서도 소개된 바가 있고, 지면관계상 다 실을 수도 없다.
얼마 전엔 관리사무소 직원의 공부를 도와 주택관리사 시험 합격에 일조하고 다른 단지 소장으로 소개까지 해 후진 양성에도 열의를 아끼지 않는다.
논현주공 14단지 등대마을엔 자랑거리가 너무나 많지만, 가장 강렬했던 것은 두 가지. 바로 국내파와 해외파 어르신들의 통합, 그리고 통일동산 가꾸기를 통한 현실의 미래, 남북통일이었다.

▲ 오른쪽부터 서창원 소장, 김대성 기전반장, 김득남 경리 대리, 문훈배 기전반장, 이영주 서무 주임, 권석훈 기전주임, 왕성근 기전주임, 김종선 기전기사, 최은상 기전기사, 류영규 기전기사, 조동석 기전기사, 김철수 기전과장

관리사무소장이 끊임없는 열정으로 입주민 주거복리증진을 위해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찾아서 노력하고, 여기에 주민의 참여와 화합이 어우러지면 얼마나 환상적인 모습이 연출되는 지, 그 모범답안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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