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품사는 기능, 의미, 형태라는 세 가지 기준에 따라 나누어지고, 성질에 따라 몇 갈래로 나누어 놓은 것을 품사라고 한다. 영어에는 8품사가 있고, 국어에는 어떤 사물의 숫자나 순서를 나타내는 수사가 있어 9품사라고 한단다.
체언에 속하는 것은 명사, 대명사, 수사, 용언에 속하는 것은 동사와 형용사, 수식언에는 관형사와 부사, 관계언에는 조사, 독립언에는 감탄사가 있다.
품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능이라고 한다.
하나의 문장이 되기 위해선 품사가 있어야 된다. 화려한 만연체도 있고, 삭막한 건조체도 있지만 하나의 문장이 되기 위해선 품사가 있어야 한다.
품사는 관계다. 인생도 관계다. 우리의 인생도 태반에서 무덤까지 관계로 이루어진 하나의 문장이 아닐까.
결국 인생은 9품사로 이루어진 하나의 문장이다.
짧은 생을 살다가는 단문도 있고, 긴 인생을 살다가는 장문도 있다.
인생에 있어 어느 인생이 소중하고 덜 소중한 것이 있다더냐.
나는 글을 쓰다가 그 문장에 꼭 들어가야 할 알맞은 말 한마디를 기어이 못 찾을 때면 남의 좋은 시를 인용하여 갖다 놓기도 한다.
우리 인생도 삶의 고비를 만날 때 나의 멘토가 되어줄 한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떠나면서 아들 텔레마커스를 보살펴 달라고 부탁한 친구의 이름이 멘토였다지.
인생은 9품사다. 명사, 대명사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동사만 특별히 중요한 것도 아니다. 형용사와 부사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며 전치사, 접속사, 감탄사가 있어 세상은 감동이다.
내 인생에 밑줄을 그을 품사 하나, 내 인생에 방점을 찍을 품사 하나, 오솔길이 되었든 그리움이 되었든 그로 인해 내 청춘의 가슴이 울렁거렸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우리는 이 지상을 떠날 때까지는 배역을 의무적으로 맡았다.
설령 그것이 유치장이든 감옥이든.
돈키호테도 미쳐서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다고 했다. 헤밍웨이도 인생은 결코 공평하지 않고,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차로에는 신호등이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했다. 헤밍웨이의 묘비명에는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오’라는 글이 쓰여 있다지.
영원히 식을 줄 모르는 비단결 같은 사랑도 잠시 후면 실낙원의 여인이 되고 실낙원의 남자가 된다.
우리 인생의 행간에 모국어의 9품사로 저 장독대의 씨 간장처럼 새까만 눈망울로 이 가을에 아름다운 문장 하나 만들어 보지 않을 텐가. 활활 타오르는 단풍처럼 감탄사 하나 만들어 보지 않을 텐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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