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논단

 

하 성 규  한국주택관리연구원 원장

 


결혼한 지 4년 된 젊은 부부는 이사를 결심하게 된다. 2년 계약 만료 후 전세금이 천정부지로 뛰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남편의 직장은 서울 도심에 있고 부인도 영등포에 직장이 있다. 이 맞벌이 부부는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외곽지로 이사를 했다. 집 문제로 서울을 탈출한 경우다. 그런데 그들이 직면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긴 출퇴근 시간이다. 새로 이사한 집 주변에는 숲이 울창한 산이 있어 부부가 산책하기에 너무나 좋다. 공기도 서울에 비할 바 아니다. 새로 이사한 집이 비록 자기 집은 아니지만 주거생활에는 불만이 전혀 없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은 하루에 약 3시간이 소요된다. 일이 많아 좀 늦게 퇴근 시에는 전철에서 녹초가 돼 줄곧 졸다 집에 온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자녀 교육문제다. 당장 세 살배기 아이를 맡기고 돌보는 일이 보통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몇 년 후 초등학교, 중학교에 진학하게 될 경우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골이라 서울에 비해 학교수준이 뒤진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탈 서울 현상의 배경에는 가장 큰 비중으로 서울의 비싼 집값을 들 수 있다. 매년 오르는 전월세를 감당하기 힘든 30~40대 연령층이다. 그리고 KTX, 고속도로 등의 교통수단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서울을 빠져나간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탈 서울 인구 중 귀농·귀촌한 중·노년층이 적지 않다.
서울을 떠난 인구는 얼마나 될까?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순이동 인구(전출-전입)가 8만7,000여 명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13만7,256여 명이다. 1년 사이 57.8% 급증했다. 특이한 것은 이들 순이동 인구 중 30대(30~39세)가 전체의 35.3%(4만8,397명)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50대(2만5,462명), 40대(2만4,826명) 순이었다. 특히 30~40대 연령층은 경제활동이 활발한 인구계층이고 결혼과 출산이 맞물려 주거문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다.
주거이동은 생애주기 모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국가마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보편적인 인간의 주거이동 설명력을 지닌 것이 ‘생애주기 주거이동모형’이다. 서구의 경우 전형적 생애 주기적 주거이동으로 결혼해 자녀가 없는 단계에서는 도심의 편리한 아파트나 임대주택에 거주하다 자녀양육단계에서부터 도시 교외의 단독주택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외지역 단독주택 선택은 1960년대 이후 서구 여러 도시들의 교외화 현상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자녀가 장성해 출가하게 되면 노부부만 남게 되어 주택유지관리가 용이한 실버타운 등에 거주하다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다.
우리나라 도시지역 거주자들의 주거이동의 패턴은 서구의 생애주기 모형과 상당부분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 도시지역 주민들은 서구 여러 나라에 비해 주거이동의 목적이 크게 두 가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하나는 주택을 이재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빈번한 주거이동을 하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자녀교육이 매우 중요한 주거이동 요인이라는 점이다.
서구 도시민들의 교외 주거지역 선호와 이동은 교외지역이 지닌 쾌적성과 저렴한 주택가격 때문이다. 즉 도심지역보다 교외지역은 넓은 주택을 소유할 수 있으며 도시내부 지역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쾌적한 주거환경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구의 주거이동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근린환경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주택은 신분재화로서 그리고 아주 중요한 이재의 수단으로 치부되고 있다. 아무리 주거환경이 열악하다 해도 향후 주택가격이 상승할 곳이라면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주거이동을 감행한다. 또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에서는 자식의 일류대학 진학을 위해서라면 비싼 주택가격(혹은 전월세)을 마다 않고 소위 학군이 좋고 과외가 용이한 곳으로 집을 옮긴다. 이렇듯 한국인의 주거이동은 생애주기모형에서 밝히지 못하는 독특한 사회경제적 속성과 사회상을 포괄하고 있다.
탈 서울 주거이동으로 서울은 ‘도시의 역동성’이 점차 떨이지게 된다. 아울러 서울에 직장을 두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집 문제로 지속적인 주거 빈곤과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시민주거안정 정책이 왜 성공적인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지 모른다. ‘주거안정은 모든 사람들의 권리’라고 강조한 유엔 해비타트(UN HABITAT)의 정신을 되새겨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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