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생명의 힘은 참 오묘하다.
여행길에 오른 일가족이 사고로 모두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하거나,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세상과 작별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인생의 덧없음에 긴 탄식이 나온다. 반면 처참한 매몰 현장에서 며칠 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한 아기를 볼 때면 생명의 강인함에 감탄이 터지기도 한다. 아이를 감싸 안고 숨진 엄마 앞에선 위대한 모성의 압도적인 힘에 숙연해진다.
생명의 역동성은 식물도 예외가 아니다. 손으로 가볍게 건드리기만 해도 뿌리째 뽑혀 나오는 가녀린 풀이건만, 엄동설한 척박한 바위 틈을 비집고 끈질기게 뻗어 올라 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보면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동물보다 식물이 훨씬 더 끈끈한 생명력을 가진 것 같아 놀랄 때가 많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 살 수 없다. 인간이 먹고 마시는 물과 공기도 자연이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연이란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즉 산과 들과 바다와 강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요즘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자연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속한 자연에 동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한없이 불편하고 때론 위험하기까지 한 산중생활인데도 현대인들은 ‘자연인’을 동경하며, 방송을 통해 작은 위안을 얻는다. 인류가 수대에 걸쳐 이룩한 눈부신 문명에 대한 이율배반이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주거에도 이런 아이러니는 수없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아파트 조경이다.
살기 좋고, 편리하며, 튼튼한 철근콘크리트 건축물. 예전엔 건물과 주차장과 놀이터가 전부였던 곳. 이 지극히 현대적이고 인공적인 건축물에 자연을 더하기 위해 인간은 풀과 나무와 꽃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단지 안의 조경을 얼마나 아름답게 가꿔 놓았는지가 아파트의 품질과 명성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조경기술자가 건축기술자만큼이나 우대받는 세상이다.
인공과 자연이 결합해 하모니를 이루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사실 이 둘은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인공이 자연을 죽이기도 하고, 자연이 인공을 파괴하기도 한다.
고급아파트일수록 경쟁적으로 비싼 나무를 심는다. 한 그루 수백 만원에서 수천 만원대. 전엔 이렇게 좋은 나무들을 제대로 살펴주지 못해 얼마 못 가 죽는 일이 다반사였다. 좋은 흙은 겉에만 살짝 덮어놓고, 밑엔 폐자재를 쓸어 담아 오염시켜 죽이기도 하고, 배수로를 만들어주지 않아 뿌리가 썩어 죽게 만들기도 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건강하게 적응한 나무가 너무 힘차게 뿌리를 내리는 바람에 바닥층을 파괴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나무가 옥상이나 주차장 위에 식재돼 있다면 질긴 뿌리로 인해 구조체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예전엔 표면마감의 핵심이 방수였다면 요즘은 그에 더해 방근(防根)기능이 중요해졌다. 그리하여 개발된 제품이 방근시트다.
최근 방근시트 미시공에 대한 하자 인정 판결이 내려져 이목을 끈다. <관련기사 1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증상이 나타날 때까진 알 수도 없는 부분에서 미시공 하자가 자주 발생한다. 알았을 땐 이미 하자보증기간이 경과한 경우가 많다 보니 저의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이번 판결이 입주민 안전을 위해 경종을 울리는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고,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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