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논개
임진왜란 때 우리 강토를 짓밟은 적장(게다니)을 진주 남강으로 유인해 끌어안고 강물에 빠져 순절한 참으로 의로웠던 여인 논개는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논개의 부친은 주달문이고 모친은 밀양 박씨로 학덕이 높은 집안이었다. 13세에 부친이 별세해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논개가 열네 살 때인 1587년 천하 건달인 숙부가 토호인 김풍헌에게 논개를 민며느리로 팔고 행방을 감췄다. 이 사실을 안 논개 모녀가 외가인 안의의 봉정마을로 피신했는데 김풍헌이 당시 장수현감인 최경회에게 이를 알려 신문을 받게 했다. 논개 모녀로부터 전말을 들은 최경회는 이들을 무죄로 인정하고 관아에 머물며 병약한 최씨 부인의 시중을 들게 했다.
논개의 재주와 아름다운 용모에 감탄한 현감 부인이 남편인 최경회에게 소실로 맞이할 것을 권유하고 부인은 지병으로 숨을 거둔다. 이렇게 해서 논개가 18세 되던 해 1591년 최경회와 부부의 연을 맺고 무장현감으로 부임하는 최경회를 따라 장수를 떠나게 된다. 최경회가 1593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승진해 진주성 싸움에 참가하게 되자 논개도 진주 길을 떠났다. 그런데 1593년 진주성이 함락되고 최 장군 또한 순국하게 되자 남편의 죽음을 지켜본 논개는 다음날 촉석루에서 벌어진 왜군 승전연에 기생으로 가장하고 연회에 참석하게 된다. 10일간의 전투 끝에 승리한 왜군들은 촉석루에서 자축연을 베풀고 있었다. 왜장들은 승리감에 도취해 조선 여성들을 취하려 했고 이때 논개가 불려 나오게 됐다. 만취한 게다니가 유혹에 넘어오자 논개는 손가락 마디마디에 쌍가락지를 낀 팔로 게다니의 허리를 꽉 부둥켜안은 채 남강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논개의 나이는 겨우 19세였다. 그 뒤 진주성 싸움에서 살아남은 장수와 의병들이 최경회와 논개의 시신을 건져 고향땅인 함양군 서상면 방지리 골짜기에 묻었다.
논개는 충절로 순국했지만 기생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논개의 충성심은 이미 의심할 바 없었는데도 일부 보수적인 사대부들은 편견을 내세워 임진왜란 중 충신, 효자, 열녀를 뽑아 편찬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논개를 올리지 않는 우를 범하고 만다. 그러나 진주 사람들은 성이 함락된 날이면 강변에 재단을 차려 그녀의 의로운 혼을 위로하는 한편 국가적인 추모제전이 거행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했다.
논개가 순국한지 36년 만인 인조 7년(1629)에 정대륭이라는 선비가 의거 현장에 ‘의암義岩’이라고 새겼고 다시 백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조정에서는 논개에게 ‘의암부인’이란 칭호를 내렸다. 경종 1년(1721) 경상우병사 최진한이 논개에 대한 국가의 포상을 비변사에 건의했고 이후 영조 16년(1740) 경상우병사 남덕하의 노력으로 논개의 혼을 기리는 ‘의기사’가 의암 부근에 처음 세워지고 매년 논개 추모제가 성대히 치러지게 됐다.
논개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은 전북 장수군 계내면 대곡리 주촌마을이다. 이곳에는 논개의 생가가 복원돼 있고 장수군 두산리에는 논개의 수명비가 세워져 있다.
촉석루 앞 남강은 그 상류에 진양호 댐이 축조돼 수량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수심이 깊고 촉석루 앞 절벽에 부딪쳐 강물이 휘감아 도는 곳이다. 그 깊은 물 속에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아름다운 여인의 혼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한국 여성의 끈질긴 애국심이 아닐까 싶다.

무심한 하늘도/ 소처럼 울었다/ 진주성 무너지는 소리에// 낮선 기旗 펄럭이는 촉석루/ 바위 위에서// -장군님/ 저 푸른 남강은/ 기뻐서 울까요, 슬퍼서 웃을까요/ 검게 취한 왜장의 팔짱을 끼고/ 요염하게 웃으며// -즐겁기만 하지요/ 이렇게 승전국이 되어서// 팔자수염만 거만하게 떨며/ -하 하 하 그러하무니다// 긴 여름이 하품을 하고/ 어디선가 쓰르라미가 운다// 갑옷을 꼭 끌어 안고/ -나를 좀 위로해줘요/ 저승길에는 주막도 없다는데// 순간,/ 단호하게 몸을 날렸다/ 동백꽃보다 붉은 입술을 깨물고/ 한 떨기 매화처럼 하얗게 웃으며// 꽃잎처럼 저버린 아름다움이여! / 기품 있던 그 모습 어떻게 잊을까/ 그 단심을 무엇으로 잊을까             -박영수, <논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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