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에취, 옆 동에서 재채기 소리가 들린다. 반갑다. 순간 놀란다. 아니 반갑다니, 내가 언제부터 재채기 소리를 반겼단 말인가. 옆 동 누군가는 아마도 나보다 면역력이 더 떨어지는지 해마다 나보다 먼저 신호음을 보낸다.
인생을 살다가 보면 예기치 않은 다양한 사건 사고도 일어나고 병마를 불러들이기도 하는데 내게 일 년에 두 번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알레르기 손님을 반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 탓이 마치 내 밖에 있는 듯 고달프게 맞았지만 실은 내게 문제가 있지 않은가. 아무리 마음을 너그럽게 먹어도 몸이 싫다고 먼저 반응하며 소리를 내는 데는 어쩌지 못한다.  
그 손님을 최대한 덜 불편하게 맞으려고 나 자신을 임상한다. 내 안의 열기가 나가지 못하게 실내에서도 목을 싸매고 가벼운 모자를 쓴다. 일어나자마자 얼른 더운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자기 전에는 로열제리도 한 스푼 먹어둔다. 고맙게도 옆 동 사람처럼 재채기 소리를 내지 않고 아침을 맞이한다. 웃는다. 손님을 정성스럽게 맞으니 손님도 내게 고분고분하다.
친구에게 메시지가 와 있다. 나의 재채기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그것도 반갑다. 찬바람 기운만 비쳐도 재채기로 신호를 보내는 ‘알레르기 부대’ 사람들은 가을이 왔다고 푸른 하늘 보라고 룰루랄라 하는데 우리는 그들과 달리 재채기로 동질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전화 목소리가 맹맹하다. 그 애환은 어느 누구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참다 참다 견디기 어려워서 약을 먹으면 혼몽해지고 호흡하면서 소모되는 에너지에 비하면 엄청난 에너지 소모가 돼 쉽게 피로가 밀려온다. 내 안에서 재채기와 약이 싸우느라고 고단함으로 나타난다. 이럴 때 재채기로 못 덤빈 ‘손님’을 달래며 같이 놀아야 한다.
“가만 계셔 보세요. 제가 밥을 먹을 때는 조용하시더군요. 그건 입 운동을 할 때면 기가 올라와서 코가 강해진다는 이야기겠지요, 알겠습니다. 껌을 씹어보겠습니다. 이건 운동 자극이고요, 뜨거운 물을 머금는 것은 온열자극입니다. 그대가 조금 잠잠하더군요. 어제 마리아 자매님을 보니 목에다 커다란 자석이 몇 개 붙은 목 밴드를 착용했더군요. 이것도 무슨 처방인지 알겠어요. 몸의 기운을 자석으로 끌어 올려서 목을 강화하면 호흡기를 돕는 것이지요. 배터리로 충전한 도구를 사용해 코 부위에 온기를 쏘아주기도 하더군요. 저는 종종 수지침 법에서 배운 그대로 코의 반응 자리에 수지압봉을 붙이기도 해요. 이 모든 것이 다 호흡기 계로 흩어져 있는 기운을 모아들이는 일이지요. 급기야 오늘 거리에서 재채기를 하다가 가게로 들어갔더니 가게 주인이 처방을 말해주더라고요. 프로폴리스를 장기 복용해보라고 해요. 그것도 맞는 말이지요. 하지만 손님이 떠나면 언제 다녀갔는지도 모를 지경이 됩니다. 그렇게 쉽게 잊어요. 도처에 손님 퇴치 처방이 난무하더군요. 난 알아요. 이건 병이 아니라 체질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이젠 당신을 반기기로 했어요. 그래서 재채기 소리가 반가웠나봅니다. 반기면 손님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적게 받지요. 머물다가 갈 수도 있고, 불편함을 견디는 능력도 자라고, 참는 법도 배우지요. 이왕 오셨으면 편히 머물다가 가십시오.”
손님이 왔어도 살아야 하므로 속에다가 두꺼운 티셔츠를, 겉에는 얇은 재킷을 입고 외출을 했다. 하늘은 높고 걷기 좋은 날씨인데 전철에서 망쳤다. 에어컨 바람 때문에 동행한 손님이 화가 났다. 양재천 근처에 이르자 연속으로 재채기가 쏟아진다. 가벼운 바람인데 못 견딘다. 거리의 옷집으로 들어갔다. 계절과  무관하게 겹으로 된 겉옷을 사 입고 대처를 했다. 등이 축축하게 땀으로 젖는다. 그제서야 진정이 된다. 그것도 잠시, 땀이 식으며 몸이 차가워지자 콧물까지 동원한다. 다시 약국을 찾는다. 약을 사먹고 더운 물을 한잔 마시고 나왔다. 날마다의 인생이 순례길인데 ‘손님’ 때문에 내 인생을 멈출 수가 없어서 이것저것 동원하다가보니 어느새 내 손에는 옷과 더운 물이 든 물병, 약과  화장지까지 든 비닐주머니가 생겼다. 모두가 손님이 떠나면  사라질 물건들이다. 내게 오는 손님은 재채기 소리를 내지만 명절이란 손님은 태풍처럼 사람 속을 뒤집어 놓고 지나가기도 한다. 올 추석은 토요일, 국군의 날, 노인의 날, 개천절, 세계 한인의 날, 대체공휴일 그 사이에 끼어있다. 경비문제, 차례문제, 여건문제 등으로 가정마다 다른 명절을 지내게 될 것 같다. 여행을 못 떠나는 것과 안 떠나는 것은 다르므로 명절이란 손님도 반겨 맞으면서 잘 머물다 떠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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