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상포구에서 등대에서 바라본 강경 읍내
▲ 옥녀봉에서 바라본 강경 들녘

삽상한 바람과 코끝에 와닿는 낙엽 내음이 좋은 가을이다. 시나브로 가을 기운이 더해가는 산천이 마음을 더없이 설레게 해준다. 9월에 소개하는 충남 논산은 연인끼리 가족끼리 성큼 찾아온 갈색 가을 추억을 쌓기 좋은 곳이다.     

 

▲ 관촉사 석조미륵보살 입상

평지에 세워진 아담한 절집

첫 여행지는 서대전에서 논산으로 가는 국도변,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개태사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한 기념으로 936년에 세운 절이다. 태조는 절을 세우면서 나라에 전쟁의 기미가 있으면 부처의 위력과 하늘의 힘으로 나라를 지켜달라는 기원문을 손수 지어 바쳤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하나의 촌락을 이룰 정도로 큰절이었지만 고려 말기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점차 사세가 기울고 말았다. 그 후 조선시대에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개태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가마솥이 있어 그 당시 절의 규모를 짐작케 해준다. 이 가마솥은 옛날에 절집 승려들이 국을 끓이고 밥을 지을 때 썼던 것이다.
은진면 반야산 기슭에 자리잡은 관촉사도 논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4㎞ 정도 떨어져 있는 이 절 또한 사연이 깊다. 우람하게 솟은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계단길이 이어진다. 새롭게 단장된 보재루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2층 규모의 대웅보전과 그 앞에 미륵전이 반긴다. 관촉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온화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이다. 흔히 은진미륵이라 부르는 이 석불은 높이가 18m에 달한다. 몸체와 머리 부분을 따로 조각해 연결한 석불은 단아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마, 턱, 눈, 코, 입, 귀는 하나같이 모두 크다. 어깨까지 내려온 귀와, 양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렸고, 좁은 어깨에는 법의가 걸쳐져 있다.

 

언제나 맑고 푸른 탑정호

부적면 신풍리와 가야곡면 종연리에 걸쳐 있는 탑정호(논산지)는 대둔산의 맑은 물이 운주와 양촌을 거쳐 거대한 호수를 만들었다. 논산 들녘에 물을 공급하는 생명의 젖줄이자 내륙의 작은 바다다. 상류 쪽에 오염원이 거의 없는 탓에 물이 맑아 잉어, 쏘가리, 메기 같은 담수 어종이 풍부하다. 호수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새벽녘 물안개 필 때나 일몰 무렵이 좋다. 저녁 해가 연출한 노을은 드넓은 호수를 붉은 물결로 가득 채운다. 그 환상적인 모습을 담기 위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모여든다. 190만평에 달하는 호수 면적은 충남 관내에서 두 번째로 크다. 탑정호는 철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11월이면 호수 위로 한가로이 노니는 오리, 고니 같은 철새들을 볼 수 있으며 전망대와 자연학습원이 있는 수변공원은 가족끼리 연인끼리 깊어가는 가을날 한때를 보내기 좋다. 호수를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나무랄 데 없다. 
신풍리는 우리 역사를 증언하는 곳이기도 하다. 계백장군이 신라 군대와 맞서 싸웠던 황산벌이 바로 이곳이다. 속칭 ‘놀뫼’라고도 하는 황산벌은 지금 밭으로 변하고 일부는 호수에 잠겨 그 흔적이 묘연하다.
신풍리 수락산 기슭에는 계백장군의 묘가 있다. 당시 백제군은 황령산성, 신작리산성, 모촌리산성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신라군에 밀려 수락산, 충곡리, 황산성으로 물러나 최후를 마쳤다. 이 수락산 기슭은 계백의 결사대가 마지막으로 쓰러진 곳이다. 계백 장군 묘소 아래에는 그의 충절을 기리는 충장사와 백제시대의 유물을 비롯해 그 시대의 군사 모습을 재현한 백제군사박물관이 있다. 국궁, 승마 같은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시설도 들어섰다. 


단아하고 유려한 고택

노성면 교촌리에는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면모를 잘 간직한 명재고택(윤증 선생 옛집)이 있다. 가장 한국적인 한옥으로 평가받는 이 단층집은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어 있으며 지금도 윤증 선생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아담하게 꾸며진 연못과 정원은 유려한 기와지붕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처마선이 보여주는 멋과 누마루의 투박함이 옛 정취를 물씬 자아낸다. 화려하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고고한 선비의 기상과 품격이 집 곳곳에 올올이 스며들어 있다.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 선생(1629~1714)은 권세를 장악하고도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일화로 유명하다. 고택 안에는 명재 윤증 선생의 후손이 운영하는 ‘노서서재’라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명재고택이 있는 교촌리 마을은 파평 윤씨의 집성촌으로 걸출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충남의 명당으로 꼽힌다. 옛집 좌우로 노성향교와 노성산성이 자리잡고 있으며 1㎞ 거리에 파평 윤씨 종학당과 재실이 있다. 고택 앞마당에 가지런히 놓인 수백 개의 장독대들이 300년 명문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듯하다.

 

▲ 강경포구

가을 분위기 물씬한 강(포구)과 산

 강경읍내 앞으로는 금강이 흘러간다. 금강은 이곳 강경에서 논산천과 노성천, 강경천을 휘돌아 원을 그리듯 대해로 유유히 흘러간다. 강경은 무엇보다 젓갈 산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강경이 수산물 집산지로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후기 객주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그 당시 강경에는 배를 10여 척씩 부리는 객주들이 20여 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서해어장에서 잡은 조기, 갈치, 민어, 홍어, 게, 전갱이, 새우젓 따위를 싣고 와 이곳에서 전국으로 유통시켰다. 강경읍 태평리 일대에는 100여 개가 넘는 젓갈상점들이 모여 있다.
금강변에 서 있는 황산포구(강경포구의 옛 이름) 등대(높이 11.4m)도 볼만하다. 이 등대는 그 옛날 금강 하류에서 서해의 어물을 싣고 들어오던 어선들의 길잡이 구실을 했다. 그러다가 1987년 황산대교가 생겨나고 도선 사업이 중단되면서 등대는 철거됐고 지금의 등대는 그 후에 복원한 것이다.
강경포구 옆 바위산 중턱에는 우암 송시열이 세운 팔괘정(八卦亭)이 있다. 금강을 앞에 두고 서향으로 배치된 이 정자는 넓은 대청과 온돌방이 꾸며져 있는 겹처마 팔작지붕의 한식 기와집이다. 팔괘정에서 금강을 끼고 위쪽으로 더 올라가면 옥황상제의 전설이 서린 옥녀봉이 우뚝하다. 옥녀봉에 오르면 유유히 흘러가는 금강 줄기와 전통미 물씬 풍기는 강경읍내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한편 논산에서도 강경은 ‘세종실록지리지’와 ‘신동국여지승람’에 처음 이름을 올릴 만큼 역사가 깊다. 읍내 곳곳에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이 이를 잘 증언해준다. 강경여중고 맞은편에 있는 강경중앙초등학교의 강당, 강경정보산업고 안에 있는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옛 남일당한약방,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구 강경성결교회, 구 강경노동조합 등이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이다.


김 초 록  여행객원기자

*여행 팁

▲가는 길=경부고속도로 서대전 나들목-논산 방향-개태사(18㎞). 논산에서 개태사까지 시내버스 수시 운행, 35분 소요. 호남고속도로 논산나들목-동산사거리(우회전)-연산 방면-부적농협(우회전)(약 1.5㎞ 직진 후 좌회전)-백제군사박물관(탑정호). 대중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논산행 고속버스 40분 간격 운행. 대전, 전주, 강경에서 논산행 직행버스 수시 운행. 논산시외버스터미널(735-2372). 기차편: 용산역-논산역 하루 17회 운행, KTX:용산역-논산역 하루 6회 운행. 논산역(042-733-7788), 강경역 (042-745-7788)
▲맛집=탑정호 주변에 붕어찜과 민물매운탕 전문식당이 몇 곳 있다. 신풍매운탕(부적면 신풍리 732-7754), 안천매운탕(부적면 신풍리, 042-732-7796) 등. 연무읍내의 보은집(042-741-6960)은 한정식이, 강경읍내의 달봉가든(042-745-5464)은 젓갈백반이 유명하다. 원조연산할머니순대(연산면 연산리, 042-735-0367)는 전통 방식으로 순대를 빚어 내놓는다.  
▲숙박=논산 시내나 강경읍내의 모텔을 이용하거나 탑정호 주변에 탑정호가펜션(010-4230-9322), 탑정호펜션(010-6467-219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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