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주어의 동작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동사야말로 존재가치의 척도가 된다. 움직인다는 동사, 강물도 인생도 동사로부터다.
눈과 귀가 입이 움직이지 않으면 명사이지만, 움직이면 동사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명사인 생각과 마음이 움직이면 동사가 된다.
사랑과 행복이 움직이지 않으면 추상명사이지만, 움직이면 동사가 된다. 손과 발이, 말과 글이 움직이면 동사가 된다.
지혜의 문수보살이 명사라면 행원의 보현보살은 동사다. 너의 흔적이 남고 너의 과거가 드러나는 건 움직이는 동사 때문이다.
감사하고 고맙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건 마음이 움직이는 동사 때문이다. 사랑과 행복은 그대로인데 생각과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동사가 된다면 미움과 불행이 된다.
먹고 마시고 하는 일반 동사에서부터 동사를 돕는 조동사까지 동사의 위대함이여. 빠르게 움직이면 살 수도 있는 응급환자는 조동사까지 동원되어 사이렌을 울린다.
똑같은 남자가 지킬 박사가 되고 추악한 하이드가 되는 건 동사 때문이다. 똑같은 여자가 선녀가 되고 악녀가 되는 건 동사 때문이다. 가슴에 한을 품은 눈싸움은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고, 혀 밑에 비수를 숨긴 입씨름은 살인을 부른다. 동사 때문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삼류라 해도 눈과 입이 움직이는 동사가 될 때에는 인격과 품격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막장이 있고 끝장이 있지만 우리는 대단한 이름을 가진 명사가 있기에 동사는 좀 천천히 움직이면 어떨까.
시계가 빠르게 도는 게 아니라 우리의 동사가 너무 조급하다.
동사가 서둘지 않아도 봄날이 빨리 가는 게 슬픈 우리들이다.
백설희와 이미자가 노래하지 않아도 봄날은 간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도 봄날은 가고,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도 봄날은 간다. 김억의 ‘봄은 간다’를 보라.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억울하고 분하고 서러워도 우리의 동사가 결심을 하면 꿈은 이루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이 나라의 주인공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 당신 살자고 남의 인생 짓밟는 갑질에도, 주동자로 몰리고 온갖 음해를 뒤집어써도 우리의 복단지는 돌아오고, 총알이 빗발쳐도 서부의 사나이 장고도 돌아오지 않았던가.
여기까지 오면 코엘류의 소설 ‘연금술사’를 들먹이지 않을 수 없다.
연금술사를 만나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은 포기하지 않은 동사 때문이다. 꿈을 찾아가는 매 순간이 눈부신 순금의 시간이자 위대한 동사의 시동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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