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 논개가 외장을 안고 한 몸을 던진 의로우 바위, 의암

진주나 천릿길 내 언제 다시 오려나. 내 너를 찾아서 이런 조의 노랫가락이 언뜻 언뜻 내 마음을 스쳐가고 나면 그 자리엔 박경리 선생의 ‘토지’ 중 진주부분의 짠한 장면들이 감전되듯 찌릿찌릿 내 가슴을 관통한다.
진주는 이름 그대로 영롱한 구슬처럼, 우리들 마음 속의 보물을 가득 담고 기다리는 여심처럼 우리들에게 향기로운 손짓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첫사랑, 첫눈처럼 어느 고장을 방문했을 때의 첫 느낌은 참으로 소중하다. 감히 나는 진주의 자랑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와서 보라. 그리고 길에서든 버스에서든 관광지 어디에서든 진주 사람을 만나보라. 수려한 도시처럼 진주 사람의 결 고운 향기가 그대를 사로잡고 말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면서도 배려 깊은 행동과 말에 절로 정이 느껴지는 고장이라 여행에 앞서 마음부터 절로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이곳을 찾은 날은 제16회 논개제가 열리고 있었다. 다채로운 행사로 진행되는 이 축제는 1593년 2차 진주성 전투 당시 순국한 7만의 민·관·군과 논개의 충절을 기리는 전통예술축제다. 헌다례와 신위순행을 시작으로 제향에 악가무가 포함된 독특한 형식의 제례의식인 의암별제, 논개 순국 재현극 등이 열리고 있었다. 욕심 같아서는 진주성의 밤 풍경과 행사까지 보고 싶었으나 일정상 그리할 수 없는 것이 못내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일정에 맞춰 답사에 나섰다.
경남의 중심도시 진주는 1925년 경남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경남의 행정과 경제·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또한 민족문화의 진원지라 할 만큼 천년고도로 역사와 충절, 인재와 선비, 교육과 문화예술의 고장이다.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남강과 비봉, 망경, 선학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조건은 일찍부터 문화의 꽃을 싹띄워 왔다.
진주에 와서는 누가 뭐래도 먼저 진주성을 찾는 것이 도리이고 순서일 것이다. 그만큼 그곳은 정녕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역사가 숨 쉬고 슬픔과 회한과 낭만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수주 변영로 ‘논개’ 전문

진주성 정문 앞에는 시비 하나가 남강을 바라보며 우리를 맞이한다. 이곳을 찾는 이의 옷자락을 대신 여며주듯 절절한 그 시에 귀 기울이니 나는 부끄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
홍윤기 문학박사는 이 시에 대해 ‘한국 현대시 해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변영로는 임진왜란(1592~1597) 당시 논개의 순국을 제재로 민족애를 뜨겁게 부각시키고 있다. 흔히 찬가 형식의 시는 밖으로 풍기는 정열을 앞세우거나 진부한 교훈으로 흐르기 쉽다. 그것을 극복하는 주제의 순박한 직유가 오히려 시적 표현미를 이루게 하는 수사적 기교가 이뤄지고 있다. 젊은 미인을 표현하는 아미(여자의 아름다운 눈썹) 석류 속 같은 입술, 양귀비꽃 등에서 표출되는 유미적인 경향도 짙게 나타나고 있다. 남강 물이 푸르게 흐르는 한 논개의 조국애 또한 영원하리라는 민족의 저항의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 이는 결코 진주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선현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풍요와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이며, 우리 기성세대들은 이러한 호국정신을 후손들에게 전해야 할 의무를 숙명적으로 안고 있지 않을까 새삼 생각의 날을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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