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태어나면서 이름을 갖는 건, 최초로 획득하는 나의 명사다. 그래서 이름값을 하라고 하는 모양이며, 이름값을 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어쩌면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요, 십자가가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그 이름으로 하여 행불행이 있다고 작명에 심혈을 기울이고, 개명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명사의 종류도 많다. 복수형이 가능한 셀 수 있는 명사도 있고, 복수형이 불가능한 셀 수 없는 명사도 있다.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고유명사도 있고, 사랑이니 행복이니 소망이니 하는 추상명사도 있고, 모양과 크기가 없는 수많은 물질명사도 있다. 태초에 빛이 있었고 태초에 사랑이 있었고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것은, 태초에 명사가 있었다는 뜻이리라.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름을 대신하는 대명사가 등장한다.어쩌면 이때부터 인생이 어려워지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삶이라고 하질 않던가. 순자가 학생이 되고, 철수가 과장이 되고, 영자가 어머니가 되고, 진수가 아버지가 되면서 대신하는 이름 때문에 삶이 얼마나 버거워져 가는가. 대명사는 영광을 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명예와 불명예가 공존하면서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대명사. 비리, 음모, 부정, 소환, 구속이라는 뉴스나 기사가 많은 요즈음이다. 이름 뒤에는 장관이니, 의원이니, 사장이니, 대표니, 교수니 하는 화려한 대명사가 곤욕을 치르기도 하는 작금이다.
선과 악의 줄다리기가 난무하고 진실과 거짓의 공방이 치열하지만, 명사와 대명사라는 이름이나 이름을 대신하는 것들은 폭로의 악취가 아니라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세상은 함정을 판 놈이 함정에 빠지고 덫을 놓은 놈이 덫에 걸리는 수도 있다. 살생부를 만든 놈이 살생부에 살인이 되고, 단두대를 만든 기요틴이 단두대에서 희생되었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지만, 오늘 저녁 종합뉴스에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쿵쿵거리고 설레는 감동적인 것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어느 최고위원이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어 구속이 되었다는 이름이, 명사가 없었으면 정말 좋겠다.
대상을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나 사람의 이름을 대신하는 인칭대명사나 모든 것은 관계라고 하는 관계대명사나 당신과 나는 누가 뭐래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이다. 더는 갈 데가 없는 삶이라 해도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는 어린양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울지 마라, 너는 아직 어리다’에서 절망하지 말라고 이렇게  위로를 한다.
겁내지 마라.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기죽지 마라.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걱정하지 마라. 아무에게도 뒤쳐지지 않는다. 슬퍼하지 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조급해하지 마라. 멈추기엔 너무 이르다. 울지 마라 너는 아직 어리다.
 
정호승은 수선화에게 이야기한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나태주의 ‘부탁’이다.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는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푸시킨도 노래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아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리니.

사람이라는 삶은 명사다. 사랑은 추상명사다. 명사는 인생이며, 이름을 거론할 수 없는 수많은 당신은 대명사다. 명사, 대명사, 수사는 문장에서 조사의 도움을 받아 주체의 구실을 하는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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