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텔레비전의 화면에 기자의 손이 클로즈업됐다. 기자수첩을 쥐고 있는 깡마른 손가락에 매료되어 집중한다. 남자의 섹시함이다.
메모한 내용이 확대됐다. 신기하게도 나의 메모형식과 닮아있다. 제목이 될 만한 대목에서는 글자를 크게 쓰고, 행간은 시원시원하게 띄어 쓰며, 중요대목에는 밑줄을 그어두고 내 생각이 섞일 때는 괄호 안에 넣어둔다. 나는 메모할 때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 창작할 글감이라고 생하면 별표를 해 진하게 동그라미를 해둔다. 어떤 의미로는 수첩이 별창고이다. 나름대로 암호처리가 돼 있어도 나는 읽어낸다.
나의 글쓰기는 별을 따와서 빛을 발하는 작업이다. 수첩이 많은 나는 글감 부족으로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길이 복잡해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한번 사용한 정보는 색 사인펜으로 지워둔다. 인동초 꽃에게서 배웠다. 인동초 꽃은 벌들이 다녀가면 누렇게 변색한다. 벌들이 헛걸음질하지 않게 꽃과 벌이 상생 코드로 사인을 주고받는다. 벌들을 흰색꽃으로 유인하는 행위다.
수첩을 사용할 때는 시각적으로 보기 편하게 간이 편집을 해두는 게 요령이다.
지면을 지나치게 아끼며 잔글씨를 바짝 붙여 쓰면 일일이 글자를 짚어가며 읽어야 해서 비효율적이다. 자기만 아는 방식으로 생략할 수도 있고 예화나 삽입구는 박스처리를 해두기도 한다.
집에서는 연도가 지난 다이어리를 수첩 대신 사용한다. 처음에는 사용하지 않은 종이가 아까워서 사용했지만 나중에는 글씨를 시원시원하게 써도 아깝지 않아서 자유의 폭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소제목이 달릴 정도면 각각의 쪽을 잡아준다. 노트필기를 하듯 정성 들여 써야 한다는 강박감이 없어 좋다. 나는 그 다이어리를 수첩 대신 사용하면서 글 길 30년을 달려왔다.
아직도 수첩은 필요한데 다이어리는 주문없이 날아들지 않는다. 무료의 시대는 갔다. 직장은 정년이 있지만 문학은 정년이 없어서 나는 아직 현직이다. 지금 그 변색한 다이어리는 책꽂이 두 칸을 다 차지하고 있다.
어느 날 세미나장에서 두 개의 기자수첩이 생겼다. 크기나 부피가 적당하게 좋아서 엄청 행복했다. 어느 날 30권을 샀다. 수첩을 이렇게 많이 사는 사람이 처음이라면서 무엇하는 분이냐고 묻는다. 나는 쓸 일이 많아서라고 가볍게 말하고 나왔다.
바캉스 때와 봄나들이 때는 한 주에 원고 4편을 송고해야 하는 때가 온다. 그때를 대비해 나는 날마다 글을 쓴다. 묵은 글감은 신선도가 떨어져서 최근에 정서적 자극을 받은 데서부터 출발한다. 내가 재미있어야 글맛이 전해진다.
자녀들이 떠난 자리는 글쓰기 좋은 자리이다. 긍정 모드로 표현하자면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고 시간을 지배하면서 흥미롭게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진실하게 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보람이 누적된다면 그것이 복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 발자국은 널리 널리 찍히고 대상을 넓힐수록 수첩은 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숫자를 늘린다. 책꽂이 위 칸에 아직도 20개의 기자수첩이 희망을 안고 대기조로 꽂혀있다. 가방마다 한 개씩 넣어두었더니 든든하다. 수첩을 사던 날, 나의 내적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공교롭게도 쉬고 나면 글 쓰고 싶고, 자고 나도 글 쓰고 싶고, 몸을 쓰고 나도 글쓰고 싶다. 몸, 숨, 잠, 꿈, 쉼 이러한 단어 속에서 창의성이 잠자다가 깨어나는가 보다. 아마도 뇌가 신선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요즈음에는 수첩 대신 핸드폰을 이용하기도 한다. 자료수집에 편리하다. 이미지는 문장의 묘사로 대치하겠다는 이야기이므로 미학적으로 찍는 게 아니라 글쓰기 좋게 찍는다. 편리함을 이길 도리가 없다.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인물화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서체가 워드로 등장하고부터 서예가 실용성에서 밀려났다. 핸드폰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종이책이 시들해지고 카톡이 생기고부터 엘리베이터에 붙였던 잠언이나 짧은 글 자리가 내려졌다. 그렇게 전하지 않아도 돌아다니는 글이 카톡망을 타고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간다. 유목 독자들의 독서습관 때문에 인터넷은 미어지고 동영상 자료는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해가 저물기 전에 글감을 챙겨 하루의 마감 글을 써야 한다는 신조로 핸드폰 수첩을 들고 공원으로 나간다. 기자수첩은 나의 반려물건이다. 그와 손잡을 때 싱싱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진성의 빛은 해가 지고 나서 노을로 발하고 내 글은 내가 떠난 다음에 노을빛으로 산란하기를 소망하면서 빈 수첩에 애정을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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