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사무소장의 시선


 

 

김 호 열  주택관리사
인천 산곡한양7차아파트 관리사무소장

직무유기는 법률용어로 맡은 일이나 책임을 다하지 않고 방치함을 뜻한다.
직무유기죄는 공무원에게 해당하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형법 제122조에 나와 있다. 일상에서도 이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관리사무소에서는 주로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위협을 가할 때 단골로 거론되는 용어다.
관리란 매우 포괄적 내용을 갖고 있다. 따져보면 어느 것 하나 관리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이 순탄하고 평화로울 때는 관리할 것이 없다. 가만히 있어도 자동으로 잘 돌아가기 때문이다.
필자가 모 신규 건물의 관리사무소장을 할 때 이런 경험을 했다.
입주 초기에 정말 관리할 게 많았다. 입주관리, 시공하자, 직원문제 등 정신이 없었다. 1년 넘게 고생하고 모든 게 정상화되자 태평성대가 찾아왔다.
기본적인 업무 외에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출근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를 고민해야 했다. 이렇게 딱히 할 일이 없어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은 직무유기일까?
군대에서 말년 병장은 열외의 대접을 받는다. 제대하는 날이 가까워지면 그때까지 무사히 있다가 가라는 예우를 해주는 것이다. 관리사무소에서도 퇴직이 예정된 직원은 말년 병장처럼 직무에 손을 놓는다. 직무유기(?)에 돌입하는 것이다.
1개월 전 해고예고한 직원도 열외 대접을 해주는 게 관리사무소에서의 관례다.
시끄러운 아파트는 관리소장이 자주 바뀐다. 관리소장이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곳은 관리소장들이 가자마자 장기적 근무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 오래 있을 곳이 못 된다고 판단하면 나갈 궁리만 하고 곧 직무유기에 들어간다. 그래서 관리소장이 자주 바뀐 관리사무소는 업무가 엉망일 수밖에 없다.
365일 동안 직무유기가 반복되는 아파트는 관리도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다.
공동주택 거주자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관리소장이 자주 교체되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사실 말이다.
관리소장이 입주자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게 하려면 그만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쓸 만한 소장은 언제든 구할 수 있다고 관리소장을 소모품 취급하는데 어느 관리소장이 제대로 일을 하겠는가.
불신도 문제다. 관리소장이 하는 일을 의심하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면 관리소장은 온 힘을 다해 일하기 어렵다. 간신 같은 직원의 말만 듣고 그 직원을 통해 관리소장을 감시하며 통제하려는 것은 관리소장에게 직무유기를 하라는 것과 같다.
관리소장은 직무유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공동주택 거주자를 위해 관리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해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 평범한 관리소장이 인지상정으로 갖는 마음이다.
이런 관리소장의 입장을 이해하고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줄 때 관리소장의 직무유기는 근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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