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송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송도 해수욕장 오른편에 있는 거북섬에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붙여졌다는 설이 있고, 그 외에도 몇 가지 설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별도로 왠지 송도라는 이름이 그냥 좋다.
송(松)이라는 말이 나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인 소나무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애국가의 2절엔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소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로 시작되고, 조두남 작곡의 선구자는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로 시작된다.
우리 민족의 상징이고 지조의 표상인 소나무.
율곡 이이의 세한 삼우도(송죽매松竹梅)에도 소나무가 친구였고, 윤선도의 오우가(수석송죽월水石松竹月)에도 소나무가 벗이었지.
영월엔 한이 서린 단종의 ‘관음송’이 있고 단종의 능을 향해 굽은 ‘충절송’이 있다. 추사 김정희의 겨울 소나무 세한도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지 아니한가. 속리산 입구의 ‘정2품 소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03호이고, 청도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80호이다.
우리나라에 송도도 많다. 인천에도 송도가 있고, 포항에도 송도가 있고, 여수에도 송도가 있다. 지금 나는 부산 송도에서 바다 위의 구름산책로를 거닐고 있다. 해상스카이워크라고도 하는 이 산책로의 길이는 1년 365일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라고 365미터란다. 끝에는 행운, 장수, 건강이라는 행운의 자리가 있다. 그러고 보니 이 구름산책로는 자리(自利)의 대자(大慈)요, 이타(利他)의 대비(大悲)다.
저 바다를 바라보며 머릿속에 궁리가 많은 이 삿된 생각들이 참으로 부끄럽다. 걸림 없는 청정의 바다가 너울거리고, 걸림 없는 청정의 바람이 분다. 바다는 관(觀)은 지(止)를 따라 일어나고 혜(慧)는 정(定)을 통해 발현된다는 지관쌍운(止觀雙運)이요, 정혜등지(定慧等持)다.
바다는 지혜와 자비가 함께하는 비지쌍운(悲智雙運)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바다, 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 가슴을 가진 바다, 그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해상케이블카를 탄다. 공식적인 명칭은 ‘부산 에어크루즈’다. 출발지점인 송림공원에서 도착지 송도 스카이파크까지 1.62㎞에 39개의 곤돌라가 주렁주렁 매달려 가고 오고 있다. 곤돌라 바닥으로 바다가 보이는 크리스털 캐빈은 2만원, 바다가 보이지 않는 일반 캐빈은 1만5,000원으로 천천히 달린다. 우리는 일반 캐빈을 탄다. 속도의 시대에 느림의 미학이 풍경이 된다. 석양으로 물들어가는 바다, 그 바다 위를 나비가 되어 날고 있다.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는 거대한 바다와 연약한 나비를 대비시켜 낭만적인 꿈의 좌절과 냉혹한 현실을 인식하며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는 모더니즘의 시였지.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최대 86m 높이의 해상타워를 지나가는 전율 속에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바다가 좋다. 나도 나비처럼 바다가 도무지 무섭지 않다. 세속의 찌든 때와 속세의 풍진을 헹구어주는 바다가 좋을 뿐이다. 낮이 밤으로 변해갈 때 바다는 밤을 어떻게 보내며, 밤이 낮으로 변해갈 때 바다는 낮을 어떻게 보낼까. 저 푸른 바다의 첫날밤은 어떠했을까. 공초 오상순의 시 ‘첫날밤’은 소리, 소리, 소리였는데.

화촉동방의 촛불은 꺼지고, 청춘의 알몸이 깊은 어둠 바다 속에서 들리는 소리.
아야---야! 태초 생명의 비밀 터지는 소리, 한 생명 무궁한 생명으로 통하는 소리,
열반의 문 열리는 소리.

상부정류장에 도착하여 전망대에서 탁트인 송도를 바라본다. 송도의 바다를 바라본다. 가까이에 멀리에 남항부두, 용두산 공원, 황령산과 해운대. 어두워져 가는 송도에 밤을 빛나게 하는 불빛은 또 다른 송도의 아이콘이어라. 지금 송도는 김남조의 구만리 강물로 사랑이 흐르는 ‘낮과 밤’이다.

햇살 붉은 한낮과/ 안식의 푸른 밤이 맞물려// 낮 기울면 밤/ 밤 다하면 낮인 거/ 지극 호사여라// 더하여 그 심오한 갈피에는/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구만리 강물

송도는 사랑이 구비치는 대서사시다. 송도의 케이블카는 사랑을 실어 나르기 위해, 도솔천에서 내려온 39선녀의 치맛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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