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조계산 선암사

◈붓다 최후의 말
싯다르타의 삶은 길 위에 놓여 있었다. 교화를 하며 이곳저곳을 흘러 다니던 그는 쿠시나가라 마을의 한 숲에서 병이 나서 누워 있었다. 많은 제자들이 걱정하며 주위에 몰려 들었다. 그가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대들 중 교법에 대하여, 승가에 대하여, 실천 방법에 대하여 의문이 남아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질문을 하라”
시자 아난다가 고개를 젓고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내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다. 이 세상 일체의 것은 괴법(壞法: 일체는 변천하고 있는 것)이다”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 그것을 ‘부서지는 성질을 가진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덧없다’라고 하기도 한다. 즉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말한 것이다. 또 일설에 의하면 제자들이 마지막으로 더 남기고 싶은 말씀이 없느냐고 묻자 싯다르타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니라”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삼층석탑 -보물 제395호
불교에서의 탑은 부처의 진신 사리를 봉안한 처소로서 예배의 대상이다. 선암사 삼층석탑은 대웅전 앞 좌우에 서 있는 것으로 양식과 건립 시기가 같으며 조성 연대는 신라시대 후기인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른 이중기단의 삼층석탑으로 상하 각 밑단에는 면마다 3개의 기둥을 돋을새김했으며 위, 아래 갑석(돌 위에 포개어 얹은 납작한 돌)의 수법도 이와 같다.
탑 몸 부분(탑신부)과 지붕돌(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돼 있고, 몸 부분의 각 면에는 양 모서리에 2개의 기둥을 돋을새김했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지붕돌은 평평하고 넓으며 받침은 각각 4단으로 돼 있고 모서리의 반전이 경쾌하게 표현됐다. 두 석탑의 조성연대는 신라시대 후기인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1996년 이 탑을 해체해 복원할 때 동쪽 탑 1층 몸 아래에서 사리 장치가 출토됐는데 사리 1과가 들어 있는 금동사리함과 청자, 백자(보물 제955호)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나는 항상 대웅전 앞에 서면 주춤주춤 물러설 준비부터 한다. 왜 그럴까? 불교신자는 비록 아니지만 할머니,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불교적인 사고를 많이 하고 불교 서적을 많이 읽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신자가 아닌 것이 나를 민망하게 하는 것인지, 마음 속으로는 많은 죄를 빌기도 하는 것이다.

죄罪
구업口業이 지은 죄/ 뭐니 뭐니 해도 제일 크다// 날마다 밥 먹고/ 죄만 짓는다// 황희 정승은/ 어느 날 포르르, 입으로/ 파랑새 한 마리 날렸다던가// 대나무가 언제/ 말로 푸른 지조 키우고/ 창천蒼天을 뚫었던가// 그저 말없이/ 웃고 울고/ 하품마저 입 다물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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