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보도 1. 사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80개 농장의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2개 농장에서 DDT 성분이 검출됐지만 발표에서 제외했다. 봐주기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DDT는 맹독성으로 38년 전 사용이 금지됐다. 농식품부는 DDT가 국내에 반입된 경로와 추가 사용 농장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보도 2. 진실> 정부가 맹독성 살충제인 DDT가 발견된 농장의 토양에 대해 정밀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방역당국은 DDT의 반감기가 수십 년으로 긴 데다 1970년대까지 국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 점 등을 미뤄볼 때, DDT가 남아 있던 토양을 통해 닭의 체내로 흡수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도 3> 아파트 승강기가 고장 나 40대 여성이 갇혔으나 관리소장이 승강기 파손을 우려해 45분 동안 갇혀 있던 여성이 실신하는 일이 발생했다. 119구조대가 장비를 동원해 승강기 문을 강제로 열려고 하자 수리기사가 도착할 때까지 대기할 것을 요구하며 구조를 막았다.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한 남편이 강제개방을 요구했고, 119구조대는 3분만에 A씨를 구조했다. A씨는 실신한 상태로 구조됐다. 과호흡으로 인한 두통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한 A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남편은 ‘아내가 승강기에 갇혔는데 관리소장이 강제개방을 못하게 막았다’고 112에 신고했다.
<보도 4> 본지 1면 기사 참조.
언론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다. 뉴스 소비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보도에 의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기도 하고, 애꿎은 사람이 국민적 지탄을 받는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이 영웅이 되고, 큰 공로자가 반역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DDT 달걀’이 첫 보도되는 순간 농장주는 ‘소비자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는 악마’가 될 뻔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오래 전 토양 오염이 원인일 것이란 관계당국의 발표 덕분에 나락에 떨어지기 직전 기사회생했다.
한 아파트의 승강기가 고장 나 입주민이 갇혔다. 승강기업체 기사가 출동했지만 퇴근 차량에 길이 막혀 지체되고, 승객의 구조요청을 받은 119구조대가 먼저 도착했다. 구조대는 강제개방 여부를 물었고 소장은 갈등했다. 승객 안전이 최우선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심하게 파손되면 언제 운행을 재개할 수 있을까. 기사가 곧 도착할 텐데…. 그 사이 기다리던 승객은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하고, 달려온 남편도 강제개방을 요청해 입주민은 갇힌 지 46분여 만에 구조됐다.
그런데 승강기는 별다른 손상을 입지 않았고, 뒤이어 도착한 기사의 정비를 받아 잠시 후 운행재개에 들어갔다. 소장의 애타는 번민과 고뇌가 허무하게 끝났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눈 딱 감고 강제개방 해버렸다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것을. 하지만 운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빠져 다른 입주민의 불편이 발생했다면, 그땐 조금만 더 기다리지 않은 게 아쉬웠을 수도 있다. 어쨌든 모든 결정의 부담은 소장의 몫이다.
화가 난 남편은 경찰에 신고했고, 소장은 조사를 받게 됐다. 혐의는 업무상 과실치상.
또다시 언론들이 달려들었다. 소장은 입주민의 안전은 뒷전이고 기물파손에만 신경 쓴 ‘악마’가 될 위기에 처했다.
‘사실’은 산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진실’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진실의 눈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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