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 지난 호에 이어
마야 왕비는 꿈에 흰 코끼리를 봤다. 여섯 개의 이빨에 눈부시도록 흰 코끼리 한 마리가 왕비의 오른쪽 옆구리를 뚫고 들어오는 꿈. 흰 코끼리는 그 여인이 몸 담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가장 신령스러운 것(神)으로 떠받들리는 존재다. 그 꿈 뒤에 잉태의 징후가 나타났고 그 태몽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장차 훌륭한 왕자가 태어나리라고 기대했다.
왕비는 아기를 낳은지 7일 만에 숨을 거뒀고 아기는 이모의 손에서 자랐다. 그가 열두 살 되던 해 봄에 첫 번째의 각성이 시작됐다. 아버지 슛도다나 왕이 농민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농부가 땅을 파헤치는 쟁기 끝에서 벌레 한 마리가 나와 꿈틀거렸고 오래지 않아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그 벌레를 쪼아 물고 날아갔다. 왕자 싯다르타는 자기의 몸이 벌레가 돼 있고, 새의 부리에 자기의 몸이 찢기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먹고 먹히는 괴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살아 있는 것들이 통과해야 하는 네 개의 문, 생로병사(生老病死)
어느 날 싯다르타 왕자는 왕궁 밖으로 나갔다. 수레가 동쪽 성문을 벗어났을 때 머리칼이 마른 풀잎처럼 바래지고 몸은 지팡이처럼 깡마른 사람 하나가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그것이 낯선 모습이었으므로 시종에게 그 사람이 그토록 참혹해진 내력에 대해 물었다. 시종이 대답했다. “사람이 늙으면 다 저렇게 됩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기운이 빠지고 숨을 헐떡거리게 되고 눈이 어두워지게 되고 이가 빠져 단단한 것을 먹을 수 없게 됩니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겠구나?”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의 수레가 얼마쯤 나아가는데 길가에 누더기를 뒤집어쓴 채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며 신음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저 사람은 왜 저러고 있느냐?” “지금 병에 걸려 있습니다. 육신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한 평생을 사는 동안 전혀 앓지 않고 지낼 수가 없습니다. 앓는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고 저 사람은 지금 아픔을 못 이겨 저렇게 떨며 신음을 하고 있습니다” 싯다르타의 눈은 어둡게 흐려지고 있었다. “나도 앓게 될까. 사람들은 왜 저러한 고통을 받아야 할까. 그것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다음 외출은 서쪽 성문을 통해 했다. 수레가 인적 드문 숲에 이르렀다. 몇 사람이 흰 천으로 싼 기다란 것을 들것에 든 채 슬피 울고 있었다. 싯다르타가 시종들에게 그들이 그러한 까닭을 물었다. “죽은 사람을 화장시키기 위해 가고 있습니다. 죽음은 생명이 끊어지고 영혼이 육체에서 떠나는 것으로 영원한 이별을 가져다주는 가장 슬픈 일입니다” 싯다르타는 시체에서 자신의 죽음을 봤다. 자기가 살고 있는 것이 순간순간 죽음의 길을 걷고 있음을 깨달았다.
며칠 뒤 싯다르타는 북쪽 문을 통해 외출했다. 그의 수레는 울창한 숲에 이르렀을 때 오솔길에서 허름한 옷차림에 머리가 덥수룩한 사람을 만났다. 걸음걸이는 의젓했고, 얼굴에는 거룩한 기품이 서려 있고, 눈에는 해맑은 총기가 있었다. 싯다르타는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대는 무얼 하시는 분입니까?” “나는 출가 사문이요” 그 사문은 대답했다. “사문에게는 어떠한 이점이 있소?” “나는 세상에서 늙음과 질병과 죽음의 고통을 이웃들을 통해 경험했소. 그리고 모든 것이 덧없다는 것을 깨달았소. 그래서 부모와 형제를 이별하고 집을 떠나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도를 했소. 나의 길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평안한 길이요. 이 길에 이르러 나는 영원한 평안을 얻은 것이요” 그 말은 듣는 순간부터 싯다르타의 가슴에는 시원한 강물 한 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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