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점점뜨거워지는데 돌발 정전사고 남의 일 아니다!

 

#입주민 A씨는 여름휴가를 맞아 시골에 계신 부모님과 형님가족을 인천으로 초대했다. 지난해까지는 A씨 가족이 농사를 짓는 부모님 댁에 가 일손을 도왔지만, 올해엔 모처럼 인천관광을 시켜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계획은 첫날부터 어긋나 버렸다. 온 가족이 늦은 시간까지 담소를 나누던 중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에어컨과 선풍기는 물론이고 모든 전등이 꺼져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잠시 후 천장스피커에서 “변압기 과부하로 정전이 됐지만, 비상발전기를 가동해 엘리베이터와 비상등은 정상 작동되고 있으니 당황하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30여 분. 10명의 대가족이 모인 아파트 거실은 에어컨 냉기가 식으면서 서서히 찜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금세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걸 직감한 A씨는 결단을 내렸다.
대가족을 이끌고 인근 찜질방으로 향했다. 부모님과 형님가족은 “이것도 기억에 남을 재미있는 추억”이라며 웃어보였지만 A씨의 미안함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전국 아파트에 비상이 걸렸다. ‘강 건너 불 보듯’ 팔짱 끼고 있을 만큼 ‘남의 일’이 아니다. 누구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올여름 아파트 정전사고가 유난히 잦다.
▲지난 6일 부산 고양 전주 일산 청주 구리 아파트에서 전기가 나갔다. ▲7일엔 서울과 대구 ▲5일 서울과 인천 ▲3일 시흥 ▲지난달 26일 거제 ▲지난달 24일 부산과 대구. 이외에도 여러 건의 크고 작은 정전사고가 잇따랐다.
정부가 지난 6일 하루에만 집계한 전국 정전 가구는 무려 5,000여 가구. 원인은 노후 변압기를 제때 교체하지 않은 탓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후화만 문제가 아니었다.
한전은 일반주택에 가구당 3㎾의 전기를 공급한다. 보통 가전제품의 전력소모는 에어컨 1.8㎾, 전기밥솥 1㎾, 냉장고 1.3㎾, 진공청소기 1㎾, 세탁기 0.5㎾, 다리미 1㎾, 전자레인지 1㎾ 등이다. 여기에 김치냉장고와 TV, 컴퓨터, 선풍기, 공기청정기, 헤어드라이기, 전등, 믹서기 등을 포함하면 10㎾ 이상의 전력이 필요하지만 이는 순간 최대치이고, 모든 가전제품을 한꺼번에 사용하지도 않기 때문에 주택용 계약전력을 3㎾로 잡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1,000가구 규모의 아파트라면 3,000㎾의 전기가 투입돼야 한다. 여기에 공용부분의 전력소모를 감안하면 그 이상의 전기가 필요하다.
공동주택에 필요한 각종 기반시설과 설비기구의 규격과 설치기준은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28211호)=제40조(전기시설) ①주택에 설치하는 전기시설의 용량은 각 가구별로 3㎾(가구당 전용면적이 60㎡ 이상인 경우에는 3㎾에 60㎡ 를 초과하는 10㎡ 마다 0.5㎾를 더한 값) 이상이어야 한다.  <개정 1998. 8. 27.>
위 규정 제40조 제1항에도 전기시설의 용량은 가구별로 3㎾ 이상이어야 한다고 돼 있다. 일각에선 “이 기준마저도 1998년도에 개정된 것이어서 지금처럼 전기 전자제품을 많이 쓰는 시대엔 주택용 전력용량을 상향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딴판. 본지가 전국의 아파트를 표본조사한 결과 수전용량이 기준에 못 미치는 아파트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형 면적의 아파트들에 상대적으로 더 적은 용량의 변압기가 설치돼 있었다. <표 1. 각 지역별 표본조사 현황 도표>
건설사 입장에선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변전실 설비공사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적은 용량의 변압기를 설치하려 하겠지만, 이렇게 터무니없이 수전용량이 모자란 아파트들이 설계와 감리단계 뿐만 아니라 사용검사까지 모두 무사통과했다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령인 ‘주택건설기준’이 수많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버젓이 무시됐는데도 아무런 조치 없이 넘어갔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본지 조사결과 정전사고를 당한 아파트들도 대부분 수전용량이 모자란 것으로 드러났다.
한전은 “아파트 신축 당시 건설사에서 계약서류를 가져오면 그에 따른 공급만 해줄 뿐 용량이 적정한지에 대해선 간섭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상 ‘장기수선계획의 수립기준’에 규정된 변압기의 전면교체 주기는 25년. 수전반과 배전반은 20년이다.
설비시설의 수명이 20년 이상이란 얘기는 거의 반영구적 사용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다.
현장의 전기전문가들 역시 “변압기의 교체주기는 사실상 없다”며 “유압식 변압기라면 절연유 교체와 검사·관리만 잘해 줘도 거의 건물 수명과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용량 부족으로 인한 과부하가 심하게 걸릴 땐 경우가 달라진다. 수명이 급격하게 단축될 뿐만 아니라 폭발로 인한 대형화재까지 일어날 수도 있다. 특히 오래전 제작된 구형 변압기는 효율이 떨어지므로 최신 고효율 에너지기기로 교체해 주는 게 전기요금 절약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변압기라도 수전용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노후화까지 겹치면 사고발생 위험이 대폭 증가한다. 그렇다고 고가의 장비를 장기수선계획과 충당금에 반영하지도 않은 채 당장 바꿀 순 없는 일. 대부분 지하에 위치한 변전실 설치공간이 문제될 수도 있다.
여름은 점점 뜨거워지고 전기사용량은 하염없이 늘어만 간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관리주체와 입주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국가적 예비전력은 여유가 있다는데, 전국의 많은 아파트들이 침대 밑에 시한폭탄을 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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