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진부한 얘기가 된 것 같지만 ‘지구온난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과거에 비해 여름이 한 달이나 늘었다는 데이터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지구가 불타오르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이제 선크림은 남자에게도 필수품이 됐고, 모자나 양산 없이 뙤약볕 아래를 걷는 여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요즘 해수욕장에선 티셔츠라도 걸치고 물에 들어가야 화상을 면한다. 상반신을 드러낸 남성은 어딘가 어색하고 이상하게 보일 정도다.
전엔 아파트 창 밖에 에어컨 실외기가 매달린 집을 손가락으로 헤아렸지만, 지금은 실외기 없는 집을 찾아보기 어렵다. 낮에만 잠깐 켜는 장식품 수준이던 에어컨이 지금은 잠잘 때 더욱 중요한 생필품이 됐다.
얼마 전까진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 드려야” 했지만, 지금은 “어머님 댁에 에어컨 설치해 드려야”하는 시대다. 압력밥솥 취사 수준의 찜통더위를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동적으로 가정 전기사용량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에 따른 부작용도 속출한다.
전국적으로 아파트 정전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올 여름 들어 유난히 심하다.
언론과 정부에선 아파트 변전실에 설치된 변압기가 노후해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보다 더 심각하고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
본지 조사결과 전기 수전용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아파트들이 의외로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기사 1면>
한전이 일반주택에 공급하는 계약전력은 3㎾. 그것도 요즘처럼 전기제품을 많이 사용하는 시대엔 충분한 양이 아니지만 최소한 그 정도면 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이다. 대통령령인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도 ‘공동주택에 설치하는 전기시설의 용량은 각 가구별로 3㎾ 이상이어야 한다’고 돼 있다. 게다가 전용면적이 60㎡ 이상인 경우엔 10㎡마다 0.5㎾씩을 더해야 한다.
단적으로 1,0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라면 수전용량 3,000㎾ 이상의 전기가 들어와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최소한이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이에 한참 못 미치는 아파트들이 대거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최고의 부촌이라는 강남에서도 필요량의 50% 안팎에 불과한 아파트들이 여럿이었다. 지방에선 10%대에 머무른 곳도 있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대통령령으로 정해진 ‘주택건설기준’이 이렇게 수많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무시돼 왔는데도 어떻게 감리와 사용검사를 모두 통과할 수 있었을까?
공동주택관리법 ‘장기수선계획 수립기준’상의 변압기 전면교체 주기는 25년. 전문가들은 “절연유교체와 관리만 잘해주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파트들에서 변압기 폭발과 고장으로 인한 정전사고가 속출하는 것은 수전용량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건축 당시 잘못된 일을 이제 와서 바로잡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상세하게 각 단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사정을 모르는 입주민들은 일만 나면 관리사무소를 탓하지만, 사고는 이렇게 엉뚱한 이유로 벌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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