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폭염보다 더 ‘뜨거운 감자’가 된 경비원

연이은 미담과 논란-에어컨, 최저임금 그리고 부당지시 이경석l승인2017.08.02 18:00:59l10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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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법 개정안 65조의 국토부 답변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불씨

 

D-51.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 9월 22일 시행.
여름의 정중앙을 뜨겁게 질주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아파트. 작열하는 태양보다 더 ‘뜨거운 감자’가 아파트 단지 한 복판에 던져졌다. 뜨거운 감자의 ‘핵’은 바로 경비원. 아파트 경비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이 폭염 속 공동주택 관리현장을 달구고 있다.
쟁점은 크게 셋. ‘에어컨’과 ‘최저임금’ 그리고 ‘부당지시’다.
▲‘에어컨 스토리’는 전국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입주민 각본, 입주민 연출, 입주민 주연’의 감동드라마다.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경비실에서 ‘열풍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불고 있는 ‘경비실 에어컨 달아주기’ 바람.
입주민들이 십시일반 팔을 걷어붙였다는 얘기는 더 이상 생소한 소식이 아니다. 1~2년 전 여름부터 간간이 전해지던 이 아름다운 광경은 지금 본지에 거의 매주 오른다. 부자아파트가 아닌 임대아파트에서, 경비원과 같은 또래의 어르신이 지갑을 열고, 자상한 경비할아버지를 위해 돼지저금통을 깬 어린이의 미담은 냉풍보다 훨씬 더 시원한 청량감을 선물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11년 만에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했다. 내년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월 급여는 157만3,770원이 된다.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줄이고, 저소득층 삶의 질 개선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이뤄진 이번 대폭 인상은 노동자들에겐 희소식이지만,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는 이유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아파트 경비원 등 ‘격일제 24시간 근무자’들을 둘러싼 논쟁은 또 다른 차원의 불씨가 될 조짐이다. 하루걸러 24시간씩 일하는 사람들의 월 근로시간은 365시간, 여기에 야간엔 50%의 추가수당이 붙는다. 단순 계산하면 월 급여가 300만원을 훌쩍 넘게 된다. 휴게시간을 몇 시간 적용해도 200만원 이상. 많고 적음의 문제를 떠나 입주민들로선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금액이다.
최저임금 100%가 적용되기 시작한 2015년을 전후해 경비 감원 바람이 불었다. 한 쪽에선 이 참에 전자보안시스템으로 갈아타려는 시도가 성행하고, 다른 한 쪽에선 그래도 한 식구라는 연대의식을 보여주며 “힘들어도 함께 가자”는 감원 반대 움직임도 활발하게 일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본래의 선한 의도와 달리 감원 반대의 명분에 힘을 빼 버리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게다가 K-apt(공동주택 관리정보시스템)마저도 모든 항목을 ‘오로지 돈’으로만 판단해 상생 아파트를 계속 ‘유의’하라고 다그친다.
그러다 보니 최저임금 적용에 과거처럼 차등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수혜자인 경비원들 역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그리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그들 스스로 “월급은 좀 적어도 되니, 오래 있게만 해달라”고 읍소하는 형편이다.
일하는 노인들에게 이상과 현실 사이의 줄타기가 위태롭고 서글프다.
▲최근 들어 관리현장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경비원에 대한 ‘부당지시’ 문제다. 늦겨울의 냉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지난 3월 2일 ‘공동주택 관리종사자의 권익향상을 위해, 경비원 등 공동주택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에 대한 부당지시 및 명령을 금지’하는 내용의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음달 22일부터 시행되는 개정안 내용 중 제65조 제6항엔 ‘입주자 등,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주체 등은 경비원 등 근로자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고 근로자의 처우개선과 인권존중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근로자에게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부당지시의 범위. 현재 아파트 경비원들은 경비 본연의 임무 외에도 여러 가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택배수불, 등기우편물 대리수령, 재활용터 정리, 음식물쓰레기통 청소, 제초작업과 전지작업까지. 경비원이 어쩌다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게 됐는지 알 수 없으나 전국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관행처럼 굳어진 업무영역이다. 아파트 경비임무의 노동강도가-하루 종일 경비실에만 앉아있어도 되는 등-그리 세지 않다 보니 이런 잡무가 자연스럽게 주어졌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진다.
그런데 개정안 제65조가 시행될 경우 과연 이런 ‘잡무’를 시켜도 되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회장 최창식)는 최근 국토교통부에 이에 대한 질의를 한 바 있다. 국토부는 대주관에 보낸 답변에서 “최근 개정된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제6항(시행일 ‘17. 9. 22.)은 경비원 등 근로자에게 업무 이외의 부당한 지시와 명령을 금지해 근로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이며, 부당한 지시나 명령의 범위에 대하여는 위 법령에서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해당 공동주택에서 경비 등 용역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위 조항을 준수해 인권이 보호되도록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할 것이며, 업무의 범위를 명확히 해 계약 당사자 상호 간 계약이 체결됐다면 해당 업무는 부당한 지시로 볼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대주관 임한수 법제팀장은 “국토부 답변은 공적인 업무 이외의 개인적인 일에 경비원이나 관리직원을 부려선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며 “기존의 택배수불이나 재활용터 정리 같은 일상적 업무는 계약서에 명확히 해두고 계속 수행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개정안 제65조 제6항의 문제는 ‘경비원의 업무범위를 계약서상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불씨가 사그라들었다고 보기엔 아직 찜찜한 구석이 있다.
수도권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으로 근무하는 A씨는 지난해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갑작스런 연락을 받았다. 성실하게 일을 잘 하다가 얼마 전 사직한 경비원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부당한 업무지시를 내려 손해를 입었으니 이를 배상하라”는 소를 제기했기 때문.
그 당시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한참 전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들고 나온 법률은 ‘경비업법’이었다. 경비업법 제2조엔 ‘경비업’을 ‘시설경비업무, 호송경비업무, 신변보호업무, 기계경비업무, 특수경비업무’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 동법 제7조 제5항엔 ‘경비업자는 허가받은 경비업무 외의 업무에 경비원을 종사하게 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A소장은 여러 차례의 지루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최종적으로 기각판정을 받았다. 소장이 실질적 사용자의 위치에 있느냐 하는 것도 하나의 쟁점이었다. A소장은 “끝내 이기긴 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로 불려 다니게 돼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면서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배신감과 당혹스러움이 떠올라 잠을 못 이룰 지경”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주관 강기웅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국토부의 유권해석으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 시행에 대해선 크게 동요할 필요가 없지만, 아파트 경비원의 업무와 경비업법이 상충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고 “경비업법이 오히려 아파트 경비원의 일자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만큼 관계기관 및 정치권과 긴밀하게 협의해 빠른 시간 내에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묵묵히 일만 하다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미담과 논란’의 중심에 선 아파트 경비원. 화려한 사회경력을 뒤로하고 ‘어쩌다 경비원’이 된 사람들. 그들의 한숨이 무더위보다 더 힘겨워 보인다.
 

이경석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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