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집중호우로 도시가 침수되는 등 뉴스 내용이 어둡더니 비가 그쳤다. 습도는 높아만 가고 온몸은 끈적거린다. 에어컨 바람을 쐬느니 차라리 나가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한강둔치로 향한다. 힘들지 않고 걷기 위해 보는 것인지, 이미지 채집을 위해 걷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이중의 목적을 둔 외출이다. 
한참 싱싱하게 피던 능소화에게 폭우가 꽃목을 쳤다. 참수 당한 꽃송이들이 순교자의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비감에 젖어 꽃을 통해 운명을 생각해봤다. 하필이면 장마 때 꽃을 피우는지 알 수 없는 꽃의 운명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 한때는 귀하게 대접받던 꽃인데 몇해 전부터 88도로변에 능소화나무가 벽지처럼 도배되고 성장세가 좋다 보니 벽을 초록으로 채우는 데는 긴 세월이 필요치 않았다. 2년 차만 돼도 내벽을 알아보지 못하게 도배된다. 귀한 추억, 아픈 추억을 담고 피는 꽃을 스쳐 지나간다. 능소화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옅은 담자색이며 꽃잎이 넓은 꽃은 정스러우나 메꽃처럼 원통 길이가 길고 잎이 좁은 꽃은 서양인의 코처럼 날렵한 느낌이 든다. 귀하고 정스럽던 꽃도 흔하니까 희소성을 잃어 환호가 줄어든다. 사람의 친절이나 잔정도 그렇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웃는 사람이 드물다. 저들은 무엇이 사는 목표였을까를 생각해본다. 나는 웃는 얼굴을  만드는 게 인생 목표였다. 오늘 거리에서 만난 이웃은 19년 차 한 아파트에서 산다. 인사말이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고 말하며 아마도 웃고 살아서 그런가 보다고 한다. 나는 긍정했다. 그때도 웃었고 지금도 웃고 산다. 내적으로 자유롭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사는 게 힘들어도 웃을 수 없다. 다 큰 자식이 결혼해  사는 게 어려워도 웃기가 어렵고 가족이 아파도 웃기가 힘들다. 결국 웃는 얼굴은 만드는 게 아니라 일상을 살면서 만들어지는 거였다. 매순간 충실하게 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찬 바람 더운 바람 지나간 세월의 무늬가 있고 우여곡절을 겪게 되지만 생명이 부서지지 않는 한 감사하면서 웃을 수 있는 내공이 붙으면 어지간한 일로 웃음을 잃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 자타가 공인하는 웃는 얼굴이다. 
생각하다가 걷다가 보니 어느새 큰 길을 지나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음악학원 유리창에 악기 연주를 하는 모습이 실루엣으로 그려져 있다. 우리 청담수필 교실 회원들 생각이 났다. 문학 동인 활동반은 문자로 연주하는 악단이라고 명명하고 지나간다.
‘한강공원 신청담 나들목’ 승강기 앞에 도착했다. 장소의 이름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타인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있어서 좋다. 특징을 말하며 긴 설명을 하는 것보다 행정상 통용되는 이름을 사용해야 세상사람들과 정확하게 소통할 수 있다. 소통은 객관적인 코드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흙탕물이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 거기에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이 드문드문 풍경을 만들고 있다. 어머니 비위는 못맞춰도 붕어비위를 맞출 줄 알았던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나서 흘깃흘깃 쳐다봤다. 나는 낚시의 재미를 몰라서 그 부분에서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했다. 어느 날 아버지의 낚시바구니가 가벼워서 몇 마리나 잡았는가 물었다. 붕어들이 다 교회에 가버려서 없더라던 아버지 말이 생각나서 미소를 짓고 연신 걷는다. 등줄기가 흠뻑 젖는다. 나는 강태공에게 몇 마리나 잡았느냐. 여기서 잡은 물고기를 먹을 수 있느냐. 등등을 물었더니 다른 물고기는 잡지 않고 장어만 잡는다고 한다. 그 정도만 묻고 다른 낚시꾼에게 또 물었다. 장어를 잡았느냐. 몇 마리나 잡아봤느냐. 파느냐. 가격은 얼마나 받느냐. 돌아가며 물었다. 가격이 놀랍다. 10kg이면 10만원도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저 사람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세월을 낚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돈을 낚으러 온 것이었다. 한 사람이 낚싯대를 세개 이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하나, 그 법을 지키는 사람 수는 적었다. 내가 본 사람들의 대다수가 4개의 낚싯대를 담그고 기다렸다.
 어린이들이 잠시 갠 틈을 이용해 자전거를 탄다. 나는 그들을 찍었다. 지나가던 대장 아이가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관심을 가져주고 인사를 받고 인사를 받은 답례로 박수를 쳐줬다. 아이와 나는 길에서 행복을 주고받았다. 사회생활 하는데 좋은 관계맺기의 첫 걸음이 인사를 잘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 아이에게는 가르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비는 그쳤는데 땀비가 내린다. 온 몸이 비맞은 듯 젖었다. 걷고 보고 생각하는 사이에 카타르시스에 이른다. 몸 기도를 통해 기억을 맑히고 영혼을 청소하는 영육의 운동, 만사가 훈련을 통해 근육화 되기를 꿈꾸며 발길을 돌린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