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세상엔 어렵고 힘든 일이 많지만,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처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직업도 그리 흔치는 않다. 겉으로는 사무실에 앉아 정해진 업무만 보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론 민원처리에 크게 골머리를 썩는다. 과거의 입주민 민원이 주로 아파트 건축상의 하자 처리와 물리적인 생활불편을 하소연하는 내용이었다면 현재의 민원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개되고 있다. 복잡성과 상대성이 고차방정식 풀이보다 더 어렵다.
최근 제기되는 민원 중 가장 단순하면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층간소음’이다. 층간소음의 원인은 명확하다. 위층 입주민의 과도한 생활소음이 문제인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아래층 입주민의 신경과민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 어쨌든 두 사람, 혹은 두 집 간 문제다. 한 쪽이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물러서면 아주 간단하게 풀린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층간소음 충돌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선 위층의 소음과다인지, 아래층의 신경과민인지를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 개인이 느끼는 감각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자신의 문제를 순순히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현대사회가 복잡다단한 생활패턴을 보이다 보니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 낮 시간대의 층간소음 문제 해결은 더욱 난감해진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로 인한 살인사건도 잊을만하면 한 건씩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하순 또 한사람의 관리사무소장이 자살했다. <관련기사 2면>
울산에 이어 양산. 한 달도 안 된 사이에 연거푸 일어난 사건이다. 한 사람은 유서에 주민대표 중 한사람과의 갈등을 암시했고, 한 사람은 아예 유서조차 남기지 않았지만 유가족과 동료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층간소음 등의 민원 때문에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숨진 소장이 근무하던 단지는 임대아파트여서 더 큰 당혹감을 안긴다. 임대아파트는 서민 주거시설이면서 사회적 약자가 많이 거주하고 그에 따르는 특별한 어려움이 있지만, 모든 입주민이 세입자여서 민원의 양이 많더라도 내용이나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주자대표회의와 임차인대표회의는 법적 위상이 다르고, 전체 소유자가 하나의 법인 또는 기관이어서 업무상 종합 일괄처리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그런 임대아파트의 관리사무소장이 민원 때문에 자살했다는 게 동료 소장들에게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결국 임대든 분양이든 소장이 겪는 어려움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리사무소장은 직함에 ‘장’이 붙어서인지 약자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수많은 ‘장’들 중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처럼 취약한 신분을 가진 ‘장’이 또 있을까?
아파트에서의 소장은 흔히 수천 명의 ‘사장님’을 모시고 근무한다고 말한다. 모든 가구의 입주민들이 주인이고 상전이며, 관리사무소장을 비롯한 경비·미화 등의 관리직원들은 모두 ‘종업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장은 위로는 입주민을 모셔야하고, 아래로는 자신이 통솔하는 직원들을 다독여야 하는 이중적 입장에 처해 있다. 아파트 기전기사로 일하는 모씨는 “일하는 틈틈이 주택관리사 자격을 준비하려고 마음먹었으나 소장이 시도 때도 없이 당하는 모습을 보곤 바로 접었다”는 말을 들려준 적이 있다.
은퇴자에게 제2의 인생을 위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주택관리사 자격이지만 사회적 인식과 위상은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소장이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여건과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소장을 위해서도, 그리고 입주민을 위해서도.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