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어머니가 20년 걸려 아이를 남자로 키워 놓으면, 다른 여자가 나타나 20분 만에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는 말을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했다지. 아마도 결혼식장에서 결혼식을 하는 그 20분 만에 바보가 되면서 아버지가 되어가나 보다.
바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리석고 못나게 구는 사람을 얕잡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지능이 부족하고 어리석어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다고도 한다. 바보라는 유의어도 많다.
등신, 맹꽁이, 맹추, 머저리, 얼간이, 먹통, 천치, 멍텅구리, 못난이, 밥통, 반편이, 칠푼이….
암컷이 새끼를 낳고 떠나면 주야로 알을 지키다가 알이 성장하여 깨어나 둥지를 떠나면 가시고기의 수컷은 죽는다. 바보 아버지다.
남극의 신사라고 하는 황제 펭귄의 수컷을 보라. 자신의 발등에 있는 주머니에 알을 품고, 영하 80도의 맹추위와 눈 폭풍을 이겨내며 길게는 120일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서로 몸을 밀착해 온기를 하나로 뭉치는 펭귄의 허들링, 자신의 생사는 외면한 채 위벽을 녹여 토해 내 새끼에게 먹이는 펭귄의 밀크. 바보 아버지다.
살아가면서 우리도 등신이니, 칠푼이니 하는 말을 듣지 않는 아버지가 어디 있을까.
나는 큰 어리석음은 큰 지혜라는 선문답은 잘 모른다. 바보 온달이 울보 평강공주와 결혼해 훌륭한 장군이 되었다는 설화와 아무 죄도 없으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큰 어리석음을 지닌 큰 바보라는 정도만 알 뿐이다.
나는 일요일 롯데마트나 홈플러스의 식당가에 들를 때면 아이들과 아버지가 자장면을 먹고 탕수육을 먹는 걸 본다.
학원을 갔다 왔는지 책가방을 옆에 두고 연신 먹어대는 아이들을 보는 아버지의 눈빛이 어쩌면 저리도 행복해 보일까. 저 젊은 아버지가 바보처럼 웃고 있는 건 큰 바보여서 일까.
열자의 정획확금(正畵攫金)에, 시장에서 황금을 훔치는 순간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황금만 보인다고 했지.
지금 아버지는 황금 같은 자식 밖에는 보이지 않는지 오물거리는 입을 연신 닦아준다.
요즈음은 나홀로족이 많아 혼자 먹는 혼술도, 혼자 먹는 혼밥도 많다지만 이렇게 오순도순도 정말 보기 좋다.
새로운 트렌드로 당신의 인생은 한 번 뿐이라고 오늘을 즐기자고 하는 욜로족이니, 투데이족이 대세를 이룬다고 하지만 한 번 뿐인 인생이기에 생각을 좀 달리하는 것은 어떨까. 비혼이니, 졸혼이니 해싸도 인생은 그렇게 길지도 않다.
아무리 세상이 곤두박질로 요동치고 갖은 어려움이 천둥번개로 옥죄어오더라도 단단하게 버틸 수 있는 청춘이 지금이 아닌가.
얼마 안 있어 어차피 나홀로족이다. 산다는 것은 저물어 가는 것이요, 산다는 것은 홀로 되어 가는 것이라고 하질 않던가. 피 끓는 지금이야말로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더불어 사는 투게더족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게 순전히 나의 생각이다.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자식을 위해 바보 아버지가 많았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정말 바보라서 아이들과 팔씨름에도 지고, 달리기에도 지는 것이더냐. 시시한 바보가 아니라 큰 바보라서 지는 것이다.
저렇게 혼자 살아도 괜찮겠구나 하는 무서운 생각보다는 너무 무거워서 아무도 훔쳐가지 못할 묵직한 행복으로 큰 바보 아버지로 살아보면 어떨까. 아이들이 ‘아빠와 크레파스’를 부르며 잠이 들고, 꾸러기들이 ‘아빠 힘내세요’를 부르며 우리가 있다고 외친다.
아빠의 브라보 청춘, 바보 아빠인지라 누명을 써도 늙을 사이가 없어 아버지는 영원한 7월의 푸른 청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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