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오 민 석 변호사
법무법인 산하

주택관리업자가 관리사무소 직원의 퇴직급여충당금을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미리 지급받았음에도 재직기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한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입대의는 주택관리업자를 상대로 퇴직자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퇴직급여충당금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입대의와 주택관리업자의 법률관계가 민법상 위임관계이고, 퇴직급여충당금은 위임사무를 처리하는데 필요한 선급비용(민법 제687조 참조)으로서 수임인인 주택관리업자는 위임인인 입대의에게 남은 선급비용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015. 11. 26. 선고 2015다227376 판결)
반면 청소·경비용역계약과 관련된 유사 사례에서는 엇갈린 판결이 나오고 있다. 청소·경비업체가 경비원·미화원에 대한 국민연금, 고용보험료, 퇴직금 등을 미지급했을 경우 이를 입대의에 반납해야 하느냐에 관해 이를 부정하는 서울중앙지법과 부산지법의, 반대로 반환해야 한다고 본 서울북부지법과 서울중앙지법의 각 판결이 선고된 바 있다.
반환의무를 긍정한 판결들은 위에서 본 대법원 판례와 같이 청소·경비용역계약이 민법상 위임계약의 성격을 갖는다고 봤다. 반면 반환의무를 부정한 판결들은 경비·청소용역계약이 도급계약에 해당하고, 국민연금 등을 비용으로 포함시킨 용역비 산출내역서는 계약의 내용이 아니라 용역비를 결정하기 위한 기초자료에 해당할 뿐이므로 업체는 도급계약에서 정한 월 용역비 한도 내에서 자기 책임 하에 맡겨진 용역을 수행하는 것일 뿐 남은 비용을 반환할 의무는 없다고 봤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청소·경비용역계약의 본질이 민법상 도급이냐, 위임이냐의 문제다. 도급계약은 ‘어떠한 일의 완성’이라는 요소를 핵심가치로 한다. 반면 위임계약은 ‘일정한 사무처리의 위탁’이라는 요소가 강하다. 이는 경비업법이 경비업을 도급으로 파악해 규율하고 있다거나 계약서상 여러 명칭이 청소·경비 도급계약서, 도급인과 수급인, 도급금액 등으로 사용되고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계약의 법적 성질은 형식이나 용어 등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계약 내용의 실질에 따라 판단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 기준에 따르면 위탁관리계약과 마찬가지로 청소·경비용역계약도 도급계약이라기 보다는 위임계약이라고 봐야 한다. 애당초 청소나 경비용역계약을 통해 ‘완성해야 할 일’을 상정하기 어렵다.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로 청소·경비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용역계약을 통해 얻고자 하는 당사자들의 계약 목적일 뿐 수치화된 목표나 기준은 제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청소·경비용역계약의 본질이 민법상 위임계약인 이상 선급비용 중 직원들에게 미지급된 연금이나 보험료, 퇴직충당금을 입대의에 반환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더해 위임은 ‘계약 당사자 쌍방의 특별한 대인적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는 계약’이므로 복임권의 제한, 위임의 상호해지의 자유, 파산과 위임 종료, 위임 종료 시의 긴급처리(민법 제682조, 제689조, 제690조, 제691조)와 같은 조항의 적용을 받는다고 해야 한다. 최근 부산고등법원은 경비용역업체가 입대의의 무단 계약 해지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에서 경비용역계약이 위임계약이고 상호 해지의 자유가 인정된다며 배상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청소·경비용역계약의 위임계약적 성격을 정확히 파악한 것으로 타당한 판결이다.
경기도 관리규약준칙 제85조 제5항은 경비·청소 등 용역계약 시 용역비 산출내역서를 첨부하고 용역 내용이 산출내역서와 다르게 제공됐을 경우 용역비를 정산한 후 지급하도록 하는 ‘용역비 정산제’를 규정하고 있다. 다른 시·도 관리규약 준칙도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설혹 관리규약이나 용역계약에 용역비 정산에 관한 규정이 없더라도 용역계약의 본질이 위임인 이상 용역비 정산은 당연할 뿐 아니라 필수적인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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