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 논단

 

 

하 성 규  한국주택관리연구원 원장

 

유엔(UN)은 20년마다 해비타트(HABITAT)회의를 개최한다. 최초 회의는 1976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두 번째는 1996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렸다. 그리고 세 번째 회의는 지난해(2016년 10월) 에콰도르 키토에서 개최했다.
해비타트(HABITAT)는 라틴어로 ‘서식지’ 혹은 ‘거주’를 의미한다. 이번 키토에서 개최된 회의에는 관련 공무원, 전문가, 시민사회운동가 등 3만5,00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도 공공부문에서 정부대표단과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했고, 주거·도시·환경 관련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국민간위원회에서도 50여 명이 참석한 바 있다.
해비타트 회의는 지구촌 모든 국가가 직면한 도시·주거문제를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발전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제2차 해비타트회의는 인간의 정주환경, 특히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의 주거안정 및 주거권 보장을 위한 국제적 결의와 합의를 도출했다. 이번 3차 회의 핵심의제는 도시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는 포용도시다. 소외계층을 포함해 모두가 적절한 주거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도시, 다양성이 존중되고 기회의 균등과 공정한 도시, 그리고 모든 시민이 공평하게 도시 인프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포용도시를 만들자는 의도다. 
포용도시는 매우 규범적이고 선언적이라 할 수 있다. 종교와 문화의 차이를 초월하고 빈부격차를 넘어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는 도시를 만들자라는 철학이 담긴 유엔회의라 할 수 있다. 포용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임’이다. 그런데 모든 국가의 여러 도시에서 전면적이고 지속적으로 다양성이 존중되고 기회의 균등을 이루는 포용이 이뤄질 수 있을까? 
먼저 포용도시를 지향하기 위해 삶의 질 관점에서 우리나라 도시는 어떤 수준에 와 있는가를 살펴보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2017년 주거·건강·일과 삶의 균형 등 11개 항목을 반영한 행복지수 발표에서 한국은 32개 회원국 중 31위였다. 1인당 국민소득 2만7,561달러(2016년 잠정치)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체감 행복도가 낮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물질적인 것을 제외한 국민행복을 결정짓는 중요한 가치는 정의·자유·공정·신뢰·기회의 균등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적으로 부유해졌지만 불평등과 불공정이 심각하고 시민의 행복 체감도는 매우 낮다.
영국의 컨설팅업체인 머서(Mercer)에서 매년 출판하는 ‘삶의 질 보고서’에는 세계의 주요 도시를 일정한 기준에 맞춰서 점수화하고 순위를 매긴다. 중요한 기준들로는 주로 정치-경제적 안정성, 환경, 교육, 문화, 대중교통, 위생 등이다. 세계적 경영컨설팅업체 머서가 발표한 도시별 ‘삶의 질’ 순위(2016년)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빈이 지난해에 이어 1위에 올랐고, 스위스 취리히, 뉴질랜드 오클랜드, 독일 뮌헨, 캐나다 밴쿠버가 2~5위를 차지했다. 서울은 지난해보다 한 계단 떨어진 73위에 올랐고 부산은 91위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도시가 높은 순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몇 가지 성찰이 필요하다. 첫째, 도시민의 삶의 질은 사회·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위생, 교통, 환경 등이 질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미세먼지가 기준치를 넘고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없다. 당연히 도시 간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둘째, 삶의 질이란 단순히 물리적, 환경적 요소만 우수하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웃 간의 신뢰, 규범 그리고 건전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형성돼야 한다. 소위 사회적 자본이 충실하고 튼튼해야 한다.
셋째, 도시는 사회경제적으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질성이 강한 곳이다. 이러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공정성과 형평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갈등과 양극화가 심화되지 않은 도시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도시는 이제 경제적·물리적인 관점에서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으나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고 사회적 신뢰와 규범이 튼튼한 상태에는 이르지 못했다. 오늘날 성장에 기반을 둔 국내총생산(GDP) 모델이 더 이상 국민의 행복 정도를 측정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아직 우리나라는 행복지수도 개발되지 못한 상태다. 새로운 지표는 반드시 개발되고 매년 조사 분석돼야 한다. 유엔이 주창하는 포용도시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규범은 무엇인가를 심각히 논의하고 추진 로드맵을 다시 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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