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임경업 장군 비각
조선 인조 6년 4월 1일 건립한 임경업 장군 선정비는 인조 4년(1626) 임 장군이 낙안군수로 봉직하면서 선정을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정묘호란 때에도 큰 공을 세운 것을 기리기 위해 군민이 세운 것이다. 매년 정월 보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낙안객사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0호로 지정돼 있으며 객사는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외국이나 조정에서 파견된 사신의 숙소였을 뿐만 아니라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셔두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 때 고을의 관리와 선비들이 모여 망궐례(望闕禮)를 올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 객사는 세종 32년(1450) 군수 이인이 건립한 후 인조 9년(1631)과 철종 8년(1857)에 각각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는 객사 본전만 남아 있어 전체의 모습은 알 수 없으나 1900년대 초까지는 모두 보존돼 있었다고 한다. 이 객사 본전은 1909년 이후에 낙안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돼 안팎으로 변조된 부분이 많았으나 1982년에 다시 보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완벽한 좌우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다. 지붕은 본사의 경우 맞배지붕(옆에서 볼 때 ‘人’자 모양)이고, 양쪽의 날개집은 팔작지붕(옆에서 볼 때 ‘八’자 모양)이다.

◈동헌=사무당
이 건물은 조선왕조 때 지방관청으로 감사, 병사, 수사, 수령 등이 지방행정과 송사를 다루던 곳으로 동쪽은 수령이, 서쪽 방은 관리들이 사용하던 곳이다. 좌측에 있는 건물은 내아로서 수령의 안채로 사용하던 건물로 내동헌이라고도 한다. 당초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문헌을 참고하고 옛 터의 발굴 조사와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1990년 복원했다.

◈낙안성 최선준 가옥-중요민속자료 제98호
이 집은 18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밭 전(田)자 모양의 특이한 구조로 이뤄졌다. 낙안성 안의 유일한 밭 전자 형 집인데 땅이 좁아 택한 방편이라 생각된다. 남동쪽 방향이며 동쪽과 남쪽에 각각 방 1칸이 있다. 안방인 동쪽 방에는 그 밖으로 뜰 마루처럼 생긴 마루가 있으며 사랑방인 남쪽 방 또한 안마루와 같은 분위기의 마루가 있다.
남문 성벽에 붙어 있어 가게 집으로 계획된 조그만 집이지만 성벽을 이용해 만든 마당과 생활시설물들이 짜임새 있게 놓여 있다. 생활상의 요구에 따라 지어지는 우리나라 민가의 아름다움을 간직했다고 할만하다.

맥 놓고 놀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방종한 자유를 구가한 적이 그 언제였던가. 어떤 친구는 동태(굴렁쇠)를 굴리는가 하면 또 어떤 친구는 태형의 무서운 맛을 직접 체험하기도 하고 다른 어떤 친구는 추억을 더듬어 갈래머리 소녀를 찾아가기도 하며 우리는 다함께 까까머리 소년으로 돌아가 한량이라도 된 듯 콧노래 흘리며 낙안읍성을 휘돌아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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