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창고방출, 90%부터 세일’
청담동 거리의 유명브랜드에서 문자 메시지가 날아들더니 매장의 유리문이 홍보쪽지로 도배됐다. 옷을 사가라고 소리없이 외친다.
결국 한가한 어느 오후 매장으로 갔다. 가격 대비 물건이 좋은 것은 자명하나, 한꺼번에 여러 벌을 구입하면 반드시 버림받는 물건이 생겨서 필요한 것만 건져왔다. 바지 길이를 줄이라고 맡겨두고 돌아온지 보름이 지났다. 두 번이나 찾으러 갔건만 직원들은 팔 때처럼 그리 사근사근 하지 않았다. 마음이 조금 상했다. 매장 입장에서는 가슴 아픈 옷이라 친절비가 삭감될 수밖에 없으니 그러한 분위기를 내가 감수해야 맞긴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라 이해가 된다.  모든 물건의 가격에는 서비스 값이 포함된다는 것을 잊으면 마음 상하는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 한번 더 기다리는 동안 내가 녹여내리라고 마음먹고 매장을 빠져나왔다. 그러한 파악도 하지 못하고 정품매장에서처럼 처신하다가는 꼴불견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태리 여행하듯 우리 동네를 관광하는 눈으로 훑기로 한다. 천천히 걸으니 안보이던 것이 많이 보인다. 머무니까 깊이 보인다. 마음을 두고 보니 자세히 보인다. 나는 속상함이 기억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낯선 정보로 쉼없이 교란을 시도한다. 우선 그 기분보다 더 느낌이 강렬해야 물리칠 수 있으므로 나의 정서를 자극하는 대상에 몰입한다. 메모 대신 핸드폰 사진으로 대신한다.
빌딩과 빌딩 사이에서 접시꽃이 10송이나 피었다. 찰깍.
‘나무가 자랄 환경으로는 제로지대인데도 불구하고 그 나무가 꽃을 피워냈네. 
어디서나 꽃나무는 꽃을 피우고 사람은 웃음꽃을 피우면 되는 거지. 맞아.’
그 옆 건물에서 PUB 간판을 보았다. 찰깍.
‘맥주와 햄버거를 파네. 지난해에 영국과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여행을 다녀와서인지 그 가게 간판이 내 눈에 관심있게 들어오는 게 신기하네. 경험의 투사, 무섭다. 런던의 펍에서 먹은 생선튀김은 신선했고 감자튀김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했어. 언제 한번 들어가서 분위기를 비교해봐야지.’ 
현실과 기억 사이를 넘나들며 걷다가 건널목 앞에 섰다. 찰깍.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생긴 신호등 앞인데 끔찍한 기억이 사라지고 이렇게 잊고 산다는 게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네. 후유증이 남지 않아서 일거야.’
 신호를 받고 건너갔다. 성물가게가 보인다. 찰깍.
‘최근 이태리 여행 중 만난 가이드가 생각나네. 로마에서 성물을 사지 말라고 했지. 자신이 이태리에 살아도 자기 어머니는 여기서 산다고 애국발언을 했지. 그림 공부 하러 가서 가이드를 하며 어머니를 대성통곡하게 만든 그 아들이 내 안에 오래 머물렀었는데 부모 마음을 봤지.’
성당 벽과 울타리 틈새에서 살던 오동나무가 없어졌다. 찰깍.
‘오동나무는 가지가 단순하고 잎이 커서 감정선이 단촐한 남편과 닮았다고 바라보던 나무인데 보이지 않으니 허전하다. 자리를 잘못 잡은 나무, 있어서 걱정, 자라서 걱정이던 나무, 뿌리가 자라는 게 화근이었을 거야. 자기가 살려다가 다른 대상에게 폐를 끼치게 되면 생명에 위협을 받는 것을 모르는 나무는 오직 생명활동에만 집중했을 거야. 짠해라. 그 오동나무는 성당건물을 위해 순교했네. 안녕 나무…잘못된 출발이었어’
‘부산복’ 간판이 울고 서 있다. 찰깍.
‘어머니가 음식점을 하다가 하늘나라로 간지 제법 됐지만 간판은 아직 그대로 서있네. 아직도 복어문양은 창문에서 익살스럽게 흔들거리고 대문 앞에는 종종 버려지는 그릇류가 보여 우리를 슬프게 했지. 가면 그만이네…’
어느새 우리 아파트 화단의 수국나무가 보인다. 찰깍.
내가 화분의 꽃을 보고 묻은지 벌써 몇해 째인가. 꽃이 피지 않아 번번이 실망을 했는데 지난해에 세 송이를 보여주더니 올해는 여러 송이를 보여주네.  뽑아내지 않고 기다린 덕에 꽃을 봤네. 그래, 그깟 며칠 기다리는 게 무슨 대수라고 마음이 상해. 무심히 기다려주는 것도 사랑인데…기억과 버무리고 성찰로 날을 세우며 교란작전을 편 것은 성공이다. 내 안에 기다림과 사랑의 기운이 한가득이다. 무심해져 돌아온 집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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