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정 순  수필가

나의 버킷리스트 1번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적혔다. 당시의 졸업생들은 ‘사인지’를 돌리는 게 유행이었으며, 주소, 성명, 혈액형, 장래희망 등을 적고 해주고 싶은 말을 적는 난도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본 ‘나’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반 친구들 모두에게 돌리니 모아보면 자신의 윤곽을 볼 수도 있다. 그때 장래의 희망을 생각하면서 세계여행이라고 적었다. 아마도 일반인이 해외로 나갈 수 없었기에 더욱 다른 세계에 대해 알고 싶고 보고 싶었을 수도 있다. 나의 버킷리스트 1번은 그날부터 ‘스위스 가보기’가 됐고 종로2가의 길거리에서 파는 산악지역의 풍경 패널을 사다가 내 방에 걸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나고 보니 나는 각 대륙마다 내 숨소리와 발자국을 남겼는데 나의 버킷리스트 1번을 지우지 못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아내와 함께 여행에 동행해주는 것을 칠순 선물처럼 해줬다. 평소에 대화내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자연풍광만으로 흡족해할 것 같지 않아 이태리를 집중적으로 보고 스위스는 융프라우만 보도록 일정이 짜인 프로그램을 선택했으니 남편은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됐다. 
세계 안에서 숱한 예술가를 배출하고 문화의 1번가로 자리를 굳혔던 이태리는 지역마다 문화의 특성이 다르고 경관이 다르고 역사가 달라서 단순하게 말할 곳이 못된다고 이해해버렸다. 로마, 바티칸, 폼페이, 쏘렌토, 카프리, 나폴리, 피렌체, 친퀘테레 중 마나룰라, 베네치아 등 관광할 내용의 개성이 너무 달랐다.
이태리는 천혜의 땅이다. 여행을 시작한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쾌청한 지중해식 기후의 전형을 보여줬다. 일년에 3모작을 할 정도로 볕이 좋고 농지가 확보돼 있어 유럽의 먹거리를 그 나라와 이웃한 프랑스에서 보급할 정도라니 풍요를 누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대리석 산에서는 절편을 잘라내듯 돌을 잘라내는 모습도 봤다. 재료가 풍부해 음식문화가 발달하고 조각과 건축문화가 발달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나는 남편이 추천한 카프리섬에서 홀로 리프트를 타고 정상에 오르내리면서 마치 공중 부양된 느낌으로 사색에 잠겼다. 아무도 동행하지 못하는 죽음 후에 내가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느긋하게 하늬바람을 받으며 발 아래로 펼쳐지는 아름답고 편안한 풍광을 내려다 보며 다시 못 올 곳으로 갈 때 이런 기분일까를 생각해봤다. 감사로 이어지던 5월의 마지막 주에 여행을 떠나서 그랬을까. 한가하고 편안하게 낯선 나라의 바다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한없이 고맙고 여유로웠다. 
카프리섬은 성품이 온화하고 외양은 귀품이 있으며 섬 전체가 열체험을 한 용암으로 뒤덮여있다. 로마의 아구스투스 황제는 이 섬의 아름다움에 반해 카프리를 나폴리로부터 구입을 했다고 하고 영국의 찰스왕세자와 고 다이애나비의 허니문 장소로도 유명하지만 각 나라 부호들은 그곳에 별장 가지기를 꿈꾼다고 한다. 티베리우스는 77세까지 그 섬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늙은 염소(티베리우스를 지칭하는 은어)의 정원’이라고도 불리운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보름남짓 지났는데 새삼스럽게 다시 가고 싶어지는 이 심리는 무엇일까. 육안으로 스캔받아온 현지의 풍광과 다양한 경로로 알게 된 이태리의 정보를 합성해 내 안에 내 느낌의 이태리를 저장 중이다. 아무래도 자주 그리워질 것만 같다. 그곳의 일상 음식인 파스타나 스파게티, 빵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으나, 커피맛과 초콜릿 맛, 치즈맛은 조금 특별하고 미련이 남아 뒤늦게 입맛이 다셔진다. 우리나라의 통영과 여수, 순천을 그 나라 여행하듯 마음담아 여행하며 우리 맛의 진수를 보는 것도 훨씬 좋은 여행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단테의 신곡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고, 메디치가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고 끝없이 더 알고 싶은 것들이 많은 나라, 이태리를 통해 내 나라 여행을 꿈꾸게 됐으니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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