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집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집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리적 재화를 얻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실체가 없는 용역을 제공받을 때에도 돈이 필요하다. 목욕탕에서 때 미는 것을 맡기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간단히 발 마사지를 받아도 당연히 돈을 내야 한다.
그런데 집이나 자동차처럼 고가의 물품을 구입하면서 물건 값을 한꺼번에 지불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일생의 꿈인 ‘내 집 마련’을 위해 먹을 거, 입을 거 아껴가며 알뜰살뜰 저축했어도 막상 주택을 구입할 땐 남의 돈을 빌려야 가능하다. 가장 흔한 방법이 대출이다. 자동차를 구매할 때 역시 일시불로 구입하는 사람보다 할부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사람이 더 많다. 가끔은 자동차회사들이 장기 무이자할부 판매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어 전액 현금을 주고 사는 게 오히려 바보가 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최근 들어 집값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 특히 서울과 세종의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 않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은 일주일 사이에 수천 만원이 뛰었고, 행정수도의 기대감이 날로 커지고 있는 세종시의 주간 아파트 값 상승률은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냉랭한 찬바람이 불며 매매조차 저조했던 부동산 시장이 갑자기 과열되는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대선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걷히고 주가가 오르는 등 경제지표가 개선되면서 매수심리가 회복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대선 이후 거래량도 급증했다. 통계에 의하면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5월에만 1만 255건을 기록해 올 들어 가장 많았다. 비수기인 5월에 시장이 뜨거워지는 건 주택 값이 앞으로도 계속 상승할 것을 예고한다고 한다.
정부의 특별한 노력이 없음에도 주택가격이 자연스럽게 상승하는 건 지표상 나쁠 게 없다. 그만큼 여러 경제주체들이 앞으로의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빚’이다. 부동산가격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거액의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투기 조짐이다.
집값이 계속 오르기만 한다면 대출이 많더라도 크게 걱정할 게 없지만, 실물경제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어느 순간 거품이 꺼지게 되면 엄청난 난관에 직면할 게 뻔하다.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상황에서 대출금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집을 팔았는데도 원금조차 갚지 못하면 결국 파산하게 된다.
어렵사리 마련한 집을 처분하고도 빚더미에 올라 온 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파탄가정을 우린 많이, 그것도 주기적으로 봐 왔다. 너무나 익숙한 데자뷔를 보면서도 부나방처럼 달려들 수밖에 없는 건,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숙명인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 입주민의 가계대출이 늘면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곳이 관리사무소다. 우선 부동산 거품이 잔뜩 끼어 있을 때 비싼 값을 주고 입주한 단지와 적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입주한 단지를 비교해보면 민원의 질과 양부터 확연히 다르다. 집을 비싸게 샀다고 느끼는 단지의 입주민들은 시행사의 문제까지 들고 와 관리사무소를 괴롭힌다.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런 집을 그렇게 비싸게 주고 들어왔는데…”란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관리비 연체가구의 증가다. 가계대출이 늘고 집값이 폭락할 때 관리비 연체가 눈에 띄게 증가한다. 그때부턴 관리업무에 적색등이 켜진다. 경비원은 독촉장을 들고 다니기 바쁘고, 관리사무소장은 법원에 가는 날이 많아진다. 모두에게 힘든 상황이다.
이번엔 부디 그런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길. 빚이 늘면 그만큼 그림자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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