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6월에 접어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해수욕장들이 개장하거나 개장을 서두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해수욕장인 해운대 해수욕장이 지난 1일 개장식을 갖고 손님맞이에 들어갔다. 제트스키, 바나나보트, 워터슬라이드에 샤워장과 탈의장까지 새롭게 단장하고 여름맞이에 만전을 기했다.
송도 해수욕장엔 29년 만에 해상 케이블카가 복원돼 오는 20일부터 운행에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송정 해수욕장엔 혼자 여행하는 ‘혼족’을 위해 캡슐형 휴식공간도 설치된다고 한다. 부산 해경은 해상순찰대원들의 수영객 구조훈련을 이미 5월부터 시작했다.
벌써부터 젊음의 낭만이 출렁이는 여름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번 해수욕장 개장은 예년보다 한 달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개장하는 부산지역의 해수욕장들은 보통 7월 1일부터 손님을 맞기 시작했다. 여름 기온이 비교적 낮은 강원지역 해수욕장들은 그보다 열흘정도 늦게 개장했다.
6월 초에 해수욕을 즐긴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동해안 북쪽지방의 해수욕장은 한여름에도 수온이 낮아 오래 들어가 있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젠 장마가 오기도 전에 해수욕부터 즐기게 된 것이다. 그만큼 더워졌다.
여름휴가의 낭만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지만, 양지가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올 여름 무더위를 또 어떻게 나야 하나 하는 걱정도 한 보따리다.
공동주택의 여름나기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관리사무소와 경비실, 경로당에선 “아직 한여름도 아닌데 벌써부터 에어컨을 켜냐”는 입주민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30도의 더위에도 냉방기 가동이 쉽지 않다.
경로당엔 여러 사람이 모여 있고, 점심식사준비 등 취사행위도 이뤄지기 때문에 냉방기 가동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노인은 무더위에 더욱 약해 시원한 바람이 필수다.
다행히 요즘은 각 지자체와 봉사단체들이 영세한 노인정에 에어컨을 무상으로 설치해주고, ‘무더위 쉼터’라는 명패를 달아 전기요금도 지원하고 있어 훈훈한 인정이 느껴진다.
경비실의 경우 단독 콘크리트 벽돌건물이거나 컨테이너 박스를 사용하는 경우도 흔해서 실내기온이 40도를 넘나들 정도로 매우 뜨겁다. 경비원들은 한낮에도 음식물 쓰레기통과 재활용터를 청소하고, 푹푹 찌는 잔디밭에 앉아 잡초를 제거하기도 한다. 경비원 유니폼은 값싼 재질로 된 것이어서 통풍이 안 되고 땀 흡수도 되지 않아 몸에 달라붙기까지 한다. 갈아 입을 여벌의 유니폼도 없고, 제때 빨지도 못해 위생적으로도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비실에 앉아 휴식하며 에어컨을 켜는 건 강심장이 아니곤 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그러나 아직은 야박한 사람보다 넉넉한 사람들이 더 많은 모양이다. 폭염이 맹위를 떨치던 지난 여름 ‘경비실 에어컨 달아주기’운동이 작지만 활발하게 전개됐다. 모든 문과 창문을 열어놓고 앞섶을 풀어헤친 채, 바지를 걷어 올리고 연방 부채질을 해대는 고령의 경비원을 보는 게 딱했던지 “내 집 에어컨은 없지만, 경비실 에어컨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람들이 의기투합했다. 십시일반 성금모금에, 돼지저금통을 들고 나온 어린이까지 있어 작은 감동을 자아냈다.
이런 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여름철 작은 서민아파트는 현관문을 열어놓는 가구가 많아 강력사건에 무방비상태다. 반대로 장기간 여행으로 집을 비우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여름엔 좀도둑이 활개를 친다.
사시사철 편할 날이 없는 게 관리업무지만 올 여름은 모두가 조금 편안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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