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위기의 노후 아파트들 - 2. 늙은 아파트의 우울한 실태

 

전국 공동주택 약 3만개 단지 중 현행 공동주택관리법령상 의무관리대상은 약 1만5,000개 단지로 소규모 공동주택 등 임의관리대상도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서울시의 경우 전체 공동주택 단지 수는 2016년 12월 말 기준 총 4,256개 단지로 이 중 의무관리대상은 2,248개(약 53%), 임의관리대상 공동주택은 2,008개(약 47%) 단지에 달한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공동주택 비율이 가장 높은 강서구는 315개의 공동주택 중 임의관리대상 공동주택이 167개 단지로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148개)보다 더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강서구의 임의관리대상 공동주택 리스트를 살펴보던 중 유독 눈에 띈 공동주택이 있어 무작정 그곳을 찾았다.


모래소독 한 적 없는 녹슨 놀이터
쓰레기장으로 방치된 지하공간

총 3층짜리 10개 동에 231가구로 1,000여 명의 입주민이 거주하고 있어 소규모 공동주택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1986년 12월경에 준공해 올해로 31년이 된 A빌라는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지만 현실화되기까진 갈 길이 멀 뿐만 아니라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재건축만 바라보며 관리를 방치할 수만은 없는 노릇. 그러나 관리 전문가가 없다보니 단지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위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군데군데 깊게 파인 도로, 여기저기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는 전선들은 예삿일. 단지 내에 설치된 두 곳의 어린이놀이터는 도저히 어린이들이 이용해서는 안 될 정도로, 몇 개 안되는 놀이기구들이 녹슬어 있었고 위생적인 환경을 위해 정기적으로 소독을 해야 하는 놀이터 바닥의 모래는 소독 한 번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빌라 놀이터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지자체에 등록도 안 된 상태라고 한다.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한 한 곳의 놀이터에는 안전 펜스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추락위험도 도사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단지 내 놀이터는 가면 안 되는 곳으로 인식하고 외부에 있는 놀이터를 이용하고 있다고 전해졌지만 최근 놀이터를 찾은 아이들의 흔적이 보이기도 해 만일의 안전사고가 우려됐다. 10개동의 라인별 각 지하공간에는 오랫동안 쓰레기 더미가 그대로 방치돼 음습하고 흉물스럽기까지 했다. 들어가기조차 무서웠던 이 공간은 본래 거주공간이었지만 십수 년 전부터는 폐기물 처리장으로 전락해버렸다.

상가 건물 지하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관리사무실에는 여직원 1명과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상주하고 있었으며 경비원 2명이 서로 맞교대를, 미화원 1명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A빌라에는 주택법령에 근거한 관리규약이 제정돼 있었고 최근 개정도 했지만 확인 결과 지금까지 입주민 동의를 받지 않고 입대의의 의결만을 거쳤다고 한다. 사실상 효력이 없는 규약인 셈이다. 한때 장기수선충당금을 적립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적립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균열에 철근까지 드러나 붕괴 우려
작동 불능 소방시설은 ‘그림의 떡’

인천시 서구에 위치한 B아파트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1991년 8월에 입주한 B아파트는 총 3개동에 84가구로 구성돼 있으며 6층 규모이지만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다. 멀리서 봤을 땐 준공한지 26년이 된 아파트치곤 외관이 양호해 보였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니 심각하게 입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어 걱정이 앞섰다.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붕괴 위기에 놓여 있는 8개의 옥상 물탱크. 노후화된 급수배관으로 인해 녹물이 심해 지난해 직수공사를 실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물탱크지만 크랙이 심각하게 나 있어 붕괴될 위험에 노출돼 입주민들은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장마철이 되면 빗줄기가 크랙을 타고 계단으로 흘러내리고 누수피해를 초래하기 일쑤. 크랙은 옥상 물탱크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도시가스 계량기 밑으로는 크랙이 길게 줄을 이을 정도로 심하게 나 있어 입주민들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입주민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현관 입구의 지붕은 크랙으로 부서지고 중간에 구멍까지 나 있어 언제 무너질지 몰라 조마조마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외벽 부분에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고 철근까지 드러나 큰 충격을 안겼다. 또 지난해 소방점검 결과 소방시설이 작동 불능상태인 것으로 나타났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답보상태다.  

B아파트의 관리인력은 경비원 한 명 뿐.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경비실 및 관리사무실은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더 춥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입대의 회장이 의무관리단지 아파트 관리사무소장들을 찾아다니며 자문 등을 구하면서 해결책을 강구하려고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B아파트 회장은 “소규모 공동주택은 그야말로 관리의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어 매우 열악하다”면서 정부의 지원 및 대책마련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공교롭고 다행스럽게도 A빌라는 현재 강서구가 임의관리대상인 소규모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는 주택관리사 등으로 구성된 공동주택 자문단의 지원을 받기 위해 신청한 상태다.
인천의 B아파트도 서구가 시행하고 있는 소규모 공동주택 안전관리사업에 지원해 최근 선정된 것으로 알려져 당장은 걱정을 한시름 덜었지만 막대한 유지보수비용이 예상돼 비용조달 문제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      
규모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관리 전문가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있는 사이 소규모 공동주택의 노후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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