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NH투자증권 챔피언십 골프경기에서 김지영 골퍼가 마지막 퍼트를 놓쳐버리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동료들이 축하꽃을 뿌리기 위해 자신에게 달려들자 그제서야 우승이라는 것을 알고 기쁨을 드러냈다. 그녀가 보여준 이러한 현상은 순위표나 결과를 보면서 안달하는 선수들과 달리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데에만 집중해 그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인생의 바다에서도 누가 앞서 갈 것인지 경쟁심리가 극도로 발동하면 오히려 확인하고 싶고 초조해져서 목적지에 도달하는데 장애가 될 것이다. 파도에 맞서 제 페이스를 지키고 속도를 조율하면서 안전 운항을 해야 할 때 먼저 해야 할 일은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앞만보고 가게 되면 목적지는 자연스럽게 내 앞에 와 있게 된다. 초조하게 앞뒤를 살피다가 심리적 균형을 잃으면 실력보다 더 심하게 흔들려서 성과를 내기가 어려워진다.
내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첫 달리기 시합을 하던 날이었다. 명랑 쾌활한 아이가 달리기에는 재능이 보이지 않았다. 그날 모든 어린이들은 잘 달려서 손 바닥에 푸른 스탬프의 도장을 받고 싶고, 뒷숨을 몰아쉬며 깃발을 든 언니 뒤를 따라가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는 몸으로 달리고 그 아이의 엄마들은 마음으로 달리다가 넘어진다. 경쟁에서 뒤지거나 넘어지는 모습을 보는 엄마들은 아이들보다 더 아이같았다.
허나 발바리라는 별명을 갖고 학창시절 내내 달리기 선수를 한 나는 그냥 내 다리가 허락하는 만큼만 달리고 살자는 생각을 한 적이 여러 번이다. 선두주자로 달리면 딱총소리가 부담스럽고 마지막 주자가 되면 하얀 테이프가 공포스러웠다. 나와 함께 달리며 응원하는 사람의 함성은 나를 구름송이 위에 올려놓고 밀어주는 것 같았다. 몸이 가벼워지고 에너지가 구체적으로 합류하는 효과를 낸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날의 내 몸이 어떠했는지 실감난다.
그렇게 릴레이 선수를 거쳐서 어른이 된 내가 체육관련 전문인이 되지 않는 한 가슴 졸이고 달린 날의 어둠 조각은 아무도 대신 녹여주지 않는다. 천식기가 있는 나는 돌아앉아 쌕쌕 소리를 내며 숨을 골라야 했고 입술이 시퍼래져도 내 숨소리를 듣는 사람은 없었다. 잘 달려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숨을 쉴 뿐이었다. 소속한 팀에게 승리를 안기는데 보탬이 되어서 다소간의 뿌듯함과 잠깐의 쾌감이 스쳐갔을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운동을 할 때 경쟁심리를 자극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엄마에게 잘 해서 인정받고 싶어하고 의기양양하게 본부석으로 가고 싶어한다.
나는 그날도 집을 나가는 아이에게 당부를 했다. 누가 오는지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달리라고 했다. 하지만 준비 소리와 함께 딱총소리가 들리자 두 아이가 내 아이를 앞질러 달렸다. 딸애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속도가 줄고 심리적 균형이 깨져 뒤따라오던 아이가 치고 앞서 나갔다. 결국 4등이 되어 손바닥에 도장을 받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 아이를 나는 모른 척하고 멀리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잘 달렸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날 아이는 얼마나 서운했는지 푸른 스탬프 잉크를 손가락에 묻혀 손바닥에 극적극적하여 얼룩지게 그리더니 손을 오므렸다. 서운하고 힘이 빠졌겠지만 나는 아이를 자극하지 않기로 했다.
집에 온 아이는 조금 우울해했다. 나는 샤워실에 들어가 애써 비누장난을 하면서 무릎을 확인하는 척 했다. 어른들도 넘어지던데 넘어지지도 않고 잘 달리고 왔다고 칭찬하며 달리는 것을 못봐서 미안하다고 했다. 아이는 괜찮다며 웃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이 아이의 기분을 씻어내자 아이는 웃음을 되찾고 욕실에서 나왔다. 그날은 예쁜 옷을 여러 번 갈아 입는 놀이를 해도 된다고 허락해줬다. 5월의 햇빛에 탄 아이의 얼굴에 로션을 발라주고 냉장고에서 꺼낸 수박으로 분위기를 식혀줬다. 사노라면 허다하게 그러한 경험을 할테지만 첫 경험이라 썼을 것이다. 그 후로도 내 딸아이는 몸쓰기에 그리 민첩하지 않았지만 수영장에서는 달랐다. 아이는 선두에서 물을 차고 나는 언제나 꼴찌다. 신체조건에 따라 기능이 그렇게 다르게 표출된다. 
경쟁이란 미친 듯 본질에 몰입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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