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팔공산하면 갓바위라는 관봉석조여래좌상이 유명하다. 팔공산은 몰라도 약사여래라고도 하는 갓바위 부처님은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선본사가 있는 뒷길을 택하면 쉬운 길이지만, 우리는 1,365개의 돌계단이 버티고 있는 가파른 길을 택한다. 이왕이면 힐링도 되고 쉬엄쉬엄 생각도 하며 올라가기로 했다.
보은사를 지나고 광덕사를 지나면 갓바위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여 관암사(冠巖寺)라 명명한 큰 절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1,365계단이 시작되니 경내를 둘러보고 인증샷을 남기고 신발 끈도 다시 단단히 정비를 한다. 친절하게도 몇 계단을 올랐는지 군데군데 표시를 해두었다. 401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목을 한 번 축이고 하늘을 본다.
드디어 해발 850m의 관봉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좌상으로 높이가 4m에 이르며 팔공산의 남쪽 봉우리인 관봉(冠峰)의 정상에서 갓바위 부처님이 속세를 굽어보고 있다. 무슨 비밀이 있어 갓을 썼으며, 태풍이 불고 벼락이 쳐도 그 세월은 꿈쩍도 하지 않은 것일까.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는 기도도량의 일번지인 갓바위 앞에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있다. 대학의 수능이 등장하면 참으로 갓바위 부처님은 바쁘다. 이곳은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 소원을 들어 달라고 오는 곳이다.
중생의 이고득락(離苦得樂)을 그 누가 말리랴.
과학이 있고 의학이 있고 수학이 있지만, 생존을 위한 무수한 셈법들. 가지고 갈 게 하나도 없다고 하는 저 무소유는 가난한 자를 위로하는 경구일 뿐이다. 팔공산 정상을 오르는 등산객도, 정상을 갔다가 내려오는 사람들도, 갓바위 부처님 앞에서 두 손을 모은다.
저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앞앞이 한가지씩은 다 들어 주어야 하니 부처님도 정말이지 바쁘시겠다.
저 예쁜 아가씨는 결혼 때문일까. 저 눈이 커다란 여인은 남편의 승진 때문일까. 저 주름이 많은 할머니는 어디 아픈 곳 때문일까. 사연도 많고 곡절도 많은 사바에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염불이 끝없이 반복되는 걸 보면 녹음을 해놓았나 보다. 절을 하는데 편하도록 방석도 많고, 시주를 하는데에 편리하도록 돈을 넣는 불전함도 참으로 많다.
갓바위 약사여래부처님의 열두가지 서원의 가피가 철철 넘쳐 중생의 아픔을 모두 다 가져간다면 얼마나 좋으랴.
매월 음력 8일은 약사재일이다. 그러고 보니 불교의 4대 명절은 8일이라는 숫자와 관련이 깊다. 부처님의 탄생이 음력 4월 8일이요, 부처님의 출가재일이 음력 2월 8일이요, 성도재일이 음력 12월 8일이다. 열반재일만 음력 2월 15일이다.
부처님께서 특별한 날에만 특별한 장소에서만 보살피지는 않으리라고 믿지만, 우리가 내과를 찾고 외과를 찾고, 정신과를 찾고 산부인과를 찾듯이 담당을 하는 부처님을 알아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치과를 가야 하는데 안과를 간다면 치료가 늦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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