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대한민국이 병들었다. 한두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큰 병을 한꺼번에 앓는 중이다. 인구절벽 병, 청년실업 병, 중산층 붕괴 병, 사교육 병, 양극화 병에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 병까지…. 하나 같이 심각한 중병. 사람이라면 회생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인가, 우리 사회가 늙어가고 있다. 2013년까지만 해도 평균연령 30대였던 한국이 이젠 40줄에 접어들었다. 고령화 속도가 LTE급이다. 아기울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우수한 인재들이 일손이 부족한 일본으로 떠나고 있지만, 우리도 젊은이가 모자라 아우성칠 날이 멀지 않았다. 환갑은 물론 고희를 넘긴 늙은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을 지켜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정부는 딴 짓만 했다. 자본과 결탁해 자기이익에만 몰두한 정권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초래하는지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이러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디스토피아에 가까울 것 같아 암울하다.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온 국민이 합심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람만 늙는 게 아니다. 인간이 만든 수많은 시설물들도 차례차례 늙어가고 있다. 30년은 기본, 40년을 넘긴 도로, 댐, 항만, 교량, 화력·원자력발전소, 화학·정유시설, 공장, 학교, 축대 등이 수두룩하다. 노후화로 인해 성수대교 추락과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일이 재현될 수도 있다.
아파트 역시 마찬가지다. 수십 년 된 아파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경기가 한창일 땐 만들고, 부수고, 재건하는 일이 수월했지만 지금은 그런 사이클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경제가 허약하다. 체력고갈이다. 게다가 인구감소에 따른 신규 단지 건설 추세가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전체적인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달성했다. 결국 이제부턴 관리에 매진해야만 한다. 사람이 건강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선 꾸준히 운동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어야 하듯, 아파트도 제대로 케어해 주지 않으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내 몸처럼 아껴야 좋은 성능을 발휘하며 늙어서도 윤기와 탄력을 잃지 않는다.
그 중심에 주택관리사가 있다. 주택관리사는 공동주택 관리의 핵심 엔진이다.
국가 주택정책이 건설보급에서 관리로 이동하고, 노후 시설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주택관리사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건물과 시설을 관리하는 역을 초월해 각종 법규에 규정된 수백 가지 행정업무를 처리하며, 입주민을 연결하는 가교가 됐다. 노인과 장애인, 영세민 등 사회적 약자가 많은 일부 아파트에서 주택관리사들은 일상생활의 불편까지 돌봐주는 세심한 가장의 역할도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다. 주택관리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자체 담당공무원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된다. 인력을 몇 배로 증원하더라도 불가항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관리사들의 현실은 참으로 열악하다. 중장년층의 인기 자격증으로 부상한 지도 꽤 됐건만, 막상 초보 소장으로 발령받고 나면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중한 업무보다 일부의 하대와 모욕이 성실한 업무수행에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업무 중 쓰러지거나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민홍철 국회의원과 대한주택관리사협회, 한국입법학회가 머리를 맞댔다. 지난달 26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정책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입법학회 부회장 고인석 교수와 좌장 임종훈 교수 등 참석자들은 주택관리사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관련기사 4·5면>
변호사법, 법무사법을 비롯해 노무사법, 공인중개사법까지 대부분의 자격은 그 자격을 규정하는 법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자격사의 임무와 윤리성을 배가시킨다. 주택관리사법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 주거시설 관리에 소명의식을 갖고 사명감과 자부심 속에 일하려면 법이 필수적이다. 만시지탄이지만 강력하게 추진돼야 한다.
세미나는 입추의 여지도 없이 큰 성황을 이뤘다. 그만큼 관리현장의 열망이 크고 뜨겁단 뜻이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와 소속 회원들의 전진하는 모습이 선명하다. 부당한 외압, 왜곡과 매도가 오히려 이들을 더욱 강하게 단련시킨 듯하다.
법 제정만으로 관리 종사자들의 위상과 처우가 하루 아침에 달라지진 않는다. 의무가입제와 자정능력 강화 등 법 안에 담아야 할 내용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멀게만 보이던 주택관리사법이 열망 속에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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