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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사랑은 한문으로 애(愛)라고 쓰지요. 사랑 애(愛)는 마음 심(心)과 수(受)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 뜻을 풀어보면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서로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고 걱정하고 좋아하는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좋아하는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사랑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나,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나 똑같습니다.
그러면 용서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용서를 ‘한번 봐주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용서는 한문으로 용서(容恕)라고 씁니다. 여기서 서(恕)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으로 돼 있습니다. 즉 용서는 내가 미워하는 상대방과 같은 마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이제까지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상대방과 같은 마음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제까지 내가 미워했던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내가 미워하고 마음 아파했던 상대방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랑이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누는 상대적인 것이라면 용서는 나 스스로 자신을 깨닫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이 돼봄으로써 자신을 바꿔나가는 것입니다.
사랑이 나누는 것이라면 용서는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사랑이 꼭 필요하지요. 하지만 어쩌면 사랑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용서인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나의 상태에서 나를 분노하게 한 상대방의 잘못을 알아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려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의 산물이 곧 용서입니다.
불교에서 종교적 깨달음을 표현하는 유명한 글이 있지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로다.’라는 것입니다.
만물의 실상을 보지 못하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하지만 만물의 실상을 보려는 사람은 산과 물이 끊임없이 부식되고 풍화되면서 그 모양이 달라짐을 깨닫게 되면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 이렇게 만물의 본질을 더 깊이 바라보면 그 다음은 다시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과정도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의 일상사를 자기중심적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도 함께 생각하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내가 미워하고 있는 사람도 시간과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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