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일이다. 반만년 역사의 우리 민족에게 수많은 위인이 있지만, 이순신은 세종대왕과 함께 가장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한때 이순신은 신의 영역에 존재했다. 군 출신 독재자들이 군인의 표상으로 너무나 자주 이순신을 끌어다 이용하는 바람에 일반 국민들에게 이순신은 그저 무예가 출중하고, 용맹함이 하늘을 찌르며, 전략과 전술에 전지전능한 신화 속 인물로만 느껴졌다.
그러던 이순신이 인간의 영역으로 내려와 사람 냄새나는 친근한 인물로 다가온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가 원래는 조선의 북쪽 변방을 지키던 육군 출신이었으며, 해전에 밝지 않았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근래 들어서야 알게 됐다. 또 얼마나 많은 개인적 좌절과 고뇌를 겪었고, 숱한 시기와 모함에 시달리면서도 의지를 꺾지 않았는지 새삼 깨닫고 더욱 존경하게 됐다. 이순신이 아니었다면 한민족은 일본민족의 하류민으로 전락해 모든 걸 잃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이제 이순신 장군은 정권의 강요에 의해 숭배되는 억지 위인이 아닌, 온 국민이 가장 아끼고 존경하며 사랑하는 인물로 명예롭게 재탄생했다.
일반인들은 아직 잘 모르지만 4월 28일엔 또 하나의 기념일이 들어 있다. 바로 ‘주택관리사의 날’이다.
올해는 주택관리사제도가 도입된 지 27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27년간 주택관리사제도는 대한민국의 발전만큼이나 눈부신 성장을 이뤄왔다. 1990년 2,348명의 1회 합격자를 배출한 이래 지난해까지 5만명이 넘는 주택관리사가 배출됐다. 열아홉 번의 시험이 치러지는 동안 응시한 인원만도 37만명에 육박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IMF와 카드대란, 외환위기 등을 거치며 한국 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졌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양극화와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서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게다가 자영업 포화상태의 기형적 경제체제에서 중간에 직장을 나온 사람들에게 주택관리사는 매력적인 자격증으로 어필한다. 그렇다보니 주택관리사는 공인중개사 등과 함께 중장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자격증으로 주목받게 됐다.
27년간 한발씩 꾸준히 전진해 온 주택관리사 제도는 처음엔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으로만 취업할 수 있었던 자격증에서 현재는 임대주택, 주상복합 등으로 영역을 확장 중에 있다.
또 주로 건물관리에만 한정됐던 초창기 단순 업무에서 공동체 활동을 지원하고, 입주민 간 분쟁이나 민원 해결을 위해 중재에도 나설 만큼 복합 업무로 진화해 왔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경우 통솔해야 할 직원 수가 수백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렇게 할 일이 많고, 인기도 좋은 주택관리사에겐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취업적체 현상이다. 전국의 아파트 단지는 어림잡아 3만 여개, 그 중 법적으로 주택관리사를 배치해야 하는 의무관리단지 수는 그 절반인 1만5,000개 정도로 추산된다. 현재까지 배출된 5만명에겐 너무나 좁은 문이다. 이로 인해 취업비리라는 부작용까지 나타나고 있다. 또 ‘갑질’로 상징되는 일부 입주민과 동대표의 태도 역시 업무수행에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언론에 매도당하는 현실 또한 반드시 타개해야 할 과제다.
대한민국 아파트는 세계가 주목하는 집단주거시설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실패한 모델이 유독 한국에서만 대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에서도 관심을 보이며 도입하고 있다.
그런 한국의 아파트를 아파트답게 만들어주는 핵심장치가 바로 주택관리사제도다. 공동주택관리법을 비롯해,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승강기시설 안전관리법,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 뿐만 아니라 사업자 선정지침, 회계처리기준 및 감사기준 등에 맞춰 수백가지의 업무를 처리하며, 아파트 관리를 최선봉에서 이끌어가는 책임자가 바로 주택관리사다.
주택관리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곧 의무관리단지와 비의무관리단지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그 차이가 너무 확연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27살의 청년주택관리사. 난제가 많지만 젊기에 충분히 돌파할 것을 믿는다.
호랑이의 눈으로 황소처럼 전진하길. 늘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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