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팔공산이다. 원래 유명한 곳은 전설도 많다.
팔공산이 그렇다.
통일신라시대 때 호국정신으로 숭배되는 산 중에 팔공산은 신라의 중심이자 호국불교의 성지로써 중악이라고 하였단다.
동악의 토함산, 서악의 계룡산, 남악의 지리산, 북악의 태백산과 더불어 오악이라 하였단다.
팔공산은 신라시대에는 부악(父岳), 중악(中岳), 또는 공산(公山)이라 했으며, 고려시대에는 ‘공산’이라고만 하다가 조선시대에 들어 지금의 팔공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명산에는 전설도 많듯이 팔공산에도 유래가 많다.
여덟 고을에 걸친 산이라는 설, 원효의 제자 8명이 득도를 했다는 설, 8간지가 보관되어 있었다는 설, 8공신이 전사했다는 설이 있다.
그중에서 고려를 세운 왕건이 견훤과 전투를 벌일 때 왕건을 살리고자 왕건의 옷을 바꿔 입고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신숭겸을 포함한 8명의 장수를 기리기 위해 공산을 팔공산(八公山)이라고 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하며, 높이는 1,193m다. 팔공산맥으로 이루어지는 방가산, 화산, 팔공산, 도덕산 등이 산세가 수려하고 웅장하다.
팔공산 산신의 호칭은 격이 높은 천왕이란다. 북쪽의 태백산과 소백산, 동쪽의 주왕산과 가지산, 서쪽의 속리산과 덕유산, 남쪽의 여항산과 신어산이 각각 호위하고 있는 중심에 팔공산이 솟아 있다.
팔공산의 줄기가 칠곡군, 군위군, 영천시, 경산시, 구미시에까지 뻗어 있으며, 봉황이 날개를 펴듯 좌우에 동봉과 서봉을 거느린 팔공산은 계곡이 아름답고 산봉이 웅장하며 숲이 울창하여 1980년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동으로 은해사, 남으로 동화사, 서쪽으로 파계사, 북으로 삼존석굴이 있으며, 골짜기마다 크고 작은 암자와 사찰이 무수히 많다. 유명한 굿당도 많다.
야사로 내려오는 지명을 보라. 여덟 명의 장수가 지혜를 모으고 묘책을 세워 퇴로를 열었다는 공산전투장은 지묘동이다. 파군제 삼거리의 신숭겸 장군의 동상 뒤쪽에 있는 자그마한 봉우리는 왕이 피신하여 살았다 하여 왕산이다. 노인들은 다 전쟁터에 동원이 되어 어린 아이들만 마을을 지켰다 하여 불로동이 되었고, 이제 겨우 위험을 피해 얼굴을 폈다는 해안동이 있다. 중천에 떠있는 달이 도주를 도왔다는 반야월, 이제 겨우 살았다고 안심을 했다는 안심이라는 지역도 있다.
팔공산을 오르는 케이블카가 있어 거기까지만 가도 노약자에게는 극락이다. 칠곡의 금화계곡 팔공산금화자연휴양림에서 팔공산 미나리삼겹살을 먹고 숲속의 집에서 청정 꿈을 꾸어보니 극락이 저 멀리 서쪽 땅에만 있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던져버릴 수 없는 번뇌가 있어도,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인걸.
도시와 가까우면서도 깊은 산골짜기요, 도시와 가까우면서도 울창한 수목이요, 도시와 가까우면서도 청정한 공기다.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소리는 어느 시인이 써내려가는 한 편의 도란거리는 연애시다.
청산불묵만고화(靑山不墨萬古畵)요, 유수무현천년금(流水無絃千年琴)이라. 청산은 먹으로 그리지 않아도 만고의 그림이요, 흐르는 물은 줄이 없어도 천년을 연주하는 거문고다.
번뇌장과 소지장을 멸하면 지혜라는 반야와 깨달음이라는 보리가 얻어진다는데, 팔공산아 나는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세속을 떠나지 못하고 속세를 떠나지 못한 숲이 너무 아름답다. 밤이 깊어가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숲이 꿈틀대는 건 수많은 생명들을 껴안고 있기 때문이리라.
정호승의 시집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에 보면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고 했었지.
문정희의 ‘풀들의 길’을 보면 아무것도 아닌 우리가 가만히 제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대한 힘을 가졌는가를 안다고 했었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풀들이 눈부신 신록의 주인임을 안다고 했었지. 저 나무들이 저토록 싱싱하고 향기로운 것은 지난 겨울의 크나큰 상처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처 많은 우리의 영혼도 팔공산의 나무들처럼 향기로웠으면 좋겠다.
봄날이 따로 있겠는가, 당신이 웃으면 사시사철 봄날이지.
봄꽃이 따로 있겠는가, 당신이 행복하면 사시사철 봄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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