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언제부터인가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던 봄이 그 화려한 명성과 우아한 자태를 잃어가고 있다.
매화 목련 벚꽃 개나리 진달래에 이어 장미까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꽃들이 모진 겨울풍파를 이겨내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그 계절이, 이젠 황사와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에 가려, 스모그 속 추한 몰골이 되고 말았다. 무뎌진 아이들은 잿빛공해가 당연한 듯 공놀이 하며 뛰어 논다.
이제 봄의 상징은 ‘예쁜 꽃’과 ‘화사한 날씨’가 아닌, ‘매캐한 공기’와 ‘누런 하늘’이 됐다.
매년 봄이면 반복되는 지겨운 대기오염만큼이나 아파트 단지의 봄 공기도 무겁고 탁하다.
지난 6일 정부합동부패척결추진단이 ‘아파트 관리비리 2차 점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 안엔 회계처리 투명성이 제고됐다는 일부 긍정적인 내용도 있었지만, 일반 언론들이 보도한 핵심내용은 비리가 의심되는 816개 단지를 감사한 결과, 87.4%의 단지에서 비리를 적발했다는 것이었다.
지자체가 바쁜 시간을 쪼개 감사에 나서는 아파트는 대부분 극심한 내분에 휩싸여 있거나, 민원이 쇄도하는 곳들이다. 뻔히 문제가 보이는 단지를 조사하니 부정적발의 확률이 껑충 뛰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팩트를 교묘하게 편집한 뉴스는 보는 사람을 착시에 빠뜨린다. 713개의 적발단지는 전체의 2%대에 불과하지만 언론들은 왜곡, 과장 등 장기를 발휘해 전국 대부분의 아파트를 비리단지로 포장해 버렸다. 인터넷 포털은 또다시 “관리비 날강도” “도둑놈들”이란 비난으로 도배됐다.
이런 뉴스에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단골소재가 장기수선충당금이다. 부패척결추진단이 ‘적발사례’라며 내놓은 자료에서도 맨 앞자리를 차지한 게 ‘장기수선충당금 과소부과’건이었다.
모 아파트에 필요한 적정적립액이 46억원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적립액은 7억원 밖에 되지 않아, 39억원이나 부족하다는 내용이다. 이게 진짜 비리라면 전국 대부분의 아파트가 비리단지라는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본지가 알아본 단지들 중 단 한 곳도 장충금을 충분히 걷고 있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입주민 반발 때문이다. 입주민 입장에선 다른 곳보다 1원이라도 비싸면 당장 “왜 우리만!” 더 걷느냐며 따지고 들기 때문에 관리사무소에서 합리적으로 이해시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걸 잘못이라 한다면 노후 대비자금을 충분히 저축해 두지 못한 대부분의 평범한 국민들 역시 나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이건 개인적 부정비리가 아니라, 명백하게 ‘법과 원칙의 미비’다. 장충금 적립기준을 확실히 해서 모든 아파트가 합리적인 금액을 적립하도록 하면 금세 해결될 일이다. 정부가 할 일은 방치하고 굳이 비리라고 우기고 싶다면 전국의 모든 관리사무소장과 입주자대표를 잡아들여 처벌해야 한다.
어느 소비자 단체에선 서울지역 관리비가 비싼 이유로 장충금을 많이 걷기 때문이란 주장을 내 놓은 바 있다. 적게 걷으면 비리고, 많이 걷으면 들고 일어나니 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런 와중에 일선의 관리사무소장들이 제기한 부당간섭 문제가 아무런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의결정족수 부족과 인사권 부당개입에 대해 관할관청에 사실조사를 의뢰했지만 해결이 난망하다.(관련기사 1면) 벌써부터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부당간섭 배제 규정이 사문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패척결추진단이 발표한 자료엔 관리사무소장의 역할을 강화시켰다는 레토릭이 양념처럼 곁들여있지만 현장에선 ‘정말?’이냐고 묻는다.
공동주택 관리가 정말 잘되길 바란다면 ‘진짜 비리’와 ‘사소한 오류’와 ‘법제도의 미비’를 명확히 구분해 다뤄야 한다. 언론의 선정주의가 입주민과 입주자대표회의 그리고 관리사무소를 얼마나 이간하고 분열에 빠뜨리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진짜 비리 몇 건에 수백 개 아파트가 비리단지로 엮여 들어가고, 그나마 현장의 균형추 역할을 해줘야 할 부당간섭 배제 규정은 유명무실하다.
‘높으신 분들’에게 3D가 ‘쓰리디’인지 ‘삼디’인지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지만, 국민의 70%가 거주하는 공동주택 문제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봄 공해가 더욱 폐를 찌르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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