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긴 여정을 끝냈다.
출항한 배는 해를 두 번이나 넘기고, 세 번째 봄 햇살을 맞으며, 너무나도 길었던 항해를 마쳤다. 종착지로 삼고 밤새 내달렸던 꿈 속의 여행지, 제주 땅은 끝내 밟아보지 못한 채.
먼저 하늘로 올라간 아이들이 온 힘을 다해 도와준 덕분일까?
‘온전한 상태로 끌어 올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던 악의적 예측을 가르고, 배는 단 한 번의 시도로 거짓말처럼 수면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세계 최고의 조선강국이라던 한국의 형편없이 쪼그라든 모습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우리 기술이 아닌 중국의 기술 덕분에 세월호는 드디어 밝은 세상을 보게 됐다.
모든 이의 축복을 받으며 떠난 아이들의 항해는 끝내 눈물바다를 헤엄치며,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마지막 항해를 했다.
세월호가 마지막 항해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뱃길을 인도한 사람이 도선사다. 세월호를 감싸 안은 반잠수선의 선장이 네덜란드 사람이었으므로, 섬이 많고 물살이 센 목포 뱃길을 안내하는 건 초행길 운전자의 네비게이션 만큼이나 무척 중요하다.
도선사는 이렇게 출항하고 귀항하는 선박의 항로에 길잡이 역할을 하며 기상, 조류, 암초 등을 고려해 배의 속도와 정지를 지시한다. 하지만 하는 일이 워낙 특수한 분야인데다 숫자도 적어 일반 사람들은 그런 직업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런데 가끔 도선사가 언론에 오를 때가 있다. 최근에도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 순위로 1위 판사에 이어, 도선사가 2위에 올랐다. 그 뒤에 목사, 대학총(학)장 등이 랭크된다.
도선사가 되기 위해선 6,000톤 이상 선박의 선장으로 5년 이상 경력이 있어야 하며, 수습생 전형시험에 합격하고 해양수산부령에 따라 도선 수습생으로 실무 수습을 해야 한다. 합격도 어렵고 시작부터 자격취득까지 최소 15년 이상 걸린다고 하니 보통 사람은 도전할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너무 먼 자격증이다.
직업만족도엔 능력과 소질, 일에 대한 애정, 사회적 위상, 경쟁률 등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그 중 무시할 수 없는 게 ‘돈’이다. 속물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수입이 적으면 높은 만족감을 느끼긴 어렵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5년 한국의 직업정보’를 봐도 도선사의 연봉은 기업체 고위임원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역시 꿈의 직업이 맞는 모양이다.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를 인도한 두 도선사에겐, 아마도 그날이 직업 생애 중 가장 기억에 남을 엄숙하고 보람된 항해가 됐을 것이다. 고맙고 또 부럽다.
공동주택 관리종사자의 직업만족도는 몇 위쯤 될까? 일단 상위 100등 안에는 ‘당연히’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조사대상 전체에 들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위를 점쳐보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경기 광명시의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끔찍한 폭행을 당했다. <관련기사 1면>
온 몸에 시퍼런 멍이 들고, 눈 주위 뼈를 수술하지 않으면 실명에 이를 정도로 위중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직업만족도란 말을 꺼내는 것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주택관리사는 노후를 대비하는 중장년층에게 꿈의 자격이다. 그런데 현실은 왜 악몽일까?
직원만족도가 낮은 회사치고 잘 되는 회사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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