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됨됨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사랑, 지성, 자비심 등을 손에 꼽는 사람들이 많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다.
무슨 일이라도 하면 굶어죽을 일이 없는 세상이라지만 빈곤선의 밑바닥을 기는 일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난민들에게 지식함양을 위한 독서나, 예술작품 감상 따윈 빵 한조각의 값어치도 없는 허튼짓일 뿐이다.
먹고 살아야 하기에 직장인에겐 실업이, 자영업자에겐 가게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가장 무섭고 두렵다.
지난달 실업자 수가 135만명을 돌파했다. 통계청이 ‘구직기간 4주’를 기준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2월 최대의 실업자 수다. 실업률 5%도 7년 만의 최악이다. IMF외환위기로 나라가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던 1999년의 악몽이 떠오를 만큼 비관적이다.
일자리를 잃고 재취업에도 실패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영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달 자영업자는 1년 전보다 21만명 늘어 552만명을 넘어섰다. 이것도 15년 만에 최대다. 전문가들은 숫자보다 청년실업과 제조업 고용 한파가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나쁜 일은 혼자 오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먹거리 물가상승률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식료품 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5.3% 급등했다. OECD 평균(0.4%) 보다 10배 이상 높다. 식료품은 가장 비탄력적이어서 소비를 줄일 수도 없다.
대한민국은 퇴보하고 있는가?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의기양양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 서민들의 코앞엔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가 들이닥쳤다.
이렇게 경제가 어려워지면 수요탄력성이 큰 사치품이나 기호품 소비가 준다고 하지만 공동주택 관리업무 역시 적지 않은 타격을 받는다.
실업자가 늘고 물가가 뛰면 관리비를 연체하는 가구가 는다. 소득이 끊겨 아이 학원까지 그만둔 집에 관리비 연체독촉장을 보내는 건 관리사무소장으로서 큰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삶이 팍팍해진 입주민들은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민원까지 대폭 늘어난다. 통계에 나타나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서민 간의 ‘고통상승률’이다.
이렇게 나쁜 일들에 어처구니없는 뉴스 하나 더.
지난 50년간 물가는 어떻게 변했을까?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 쌀값은 45배, 휘발유는 63배가 올랐다. 그러는 동안 땅값은 무려 4,000배나 뛰었다. 말 그대로 ‘폭등’이다.
굵은 땀방울 쏟으며 농사짓고, 서민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봤자-넓은 땅 가지고 가만히 있었던 사람보다-점점 더 가난해지기만 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부자들이 미워했던 정부 때 오히려 지주들에게 더 큰 축복이 내려졌다.
일하는 사람은 땅 가진 사람을 당해낼 수 없다. 자영업자가 피땀 흘려 일궈 논 가게를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내놓을 수밖에 없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대한민국이 지주에게 선사하는 비명과 저주의 선물이다. 이게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국정농단뿐 아니라 집권기간 내내 먹고 사는 문제를 파탄 낸 정권은 심판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한 사람들이 있다. “마마” 앞에 석고대죄하며 용서를 빈다.
대한민국엔 ‘억울한 마마’만 있고, ‘고통받는 백성’은 없는 것인가.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