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이제는 밥을 담는 밥그릇의 용도가 변해 싸움을 담았는지, 자주 듣는 말이 밥그릇싸움이다. 그 어떤 그릇이 많아도 생존과 직결되는 밥그릇이라 그런 것일까. 용서가 있고 관용이 있고 지혜가 있어 그 옛날에는 죄수들에게도 영양밥으로 지급되던 콩밥이여.
이 세상을 하직하는 날, 저승사자 3명을 대접하는 것도 세 그릇의 사자밥이다. 그 밥그릇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 열심히 싸움을 하고 열심히 전쟁을 한다.
밥맛을 잃으면 활기가 없고 밥맛이 없으면 병이 오는 신호란다. 밥 한 끼 하자 하면 우정이 돈독해가고 밥 한 끼 하자 하면 순이와의 사랑이 시작된다. 누구와 밥 한 그릇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정화수 한 사발에 밥 한 그릇 떠놓고, 정월대보름 달님께 손 비비는 어머니의 보름밥은 사랑이었다. 쌀로 빚어지는 떡국과 송편, 옹기종기 모여 앉은 밥상, 밥그릇의 식을 줄 모르는 저 온기, 그것은 사랑이다.
늦게 오는 아버지를 위해 아랫목에 묻어둔 밥 한 그릇. 집 나간 아들을 위해 아랫목에 묻어둔 밥 한 그릇. 그것은 밥이 아니라 기다림을 승화시키는 사랑이요 행복이다.
청솔가지로 눈물 찔끔거리며 밥을 앉히던 부뚜막시대에는 왜 그리 식객도 많던가. 먹을 것이 없는 데도 자고 나면 이 골목 저 골목에 아이도 왜 그리 많이 태어나던지. 버튼만 눌리면 압력밥솥이 자동으로 알아서 해주는 편리한 시대에는 또 왜 이리 식객이 없을까. 골목에 아이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4000년을 함께 한 우리의 쌀이기에 연말이면 어려운 이웃을 위한 ‘행복 나눔 자비의 쌀’로 대문을 두드리고, 봉사와 헌신으로 나라사랑 기부천사로 앞장을 서는 쌀.
어렸을 때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쌀밥, 밥 걱정이 없으면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다는 그 쌀밥을 앞에 두고 라면을 먹고 싶고 자장면을 먹고 싶은 이 얄궂은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쌀은 효능도 많고 많지만 은밀한 비밀 하나만 들춰도 당지수를 낮추고, 하루 세끼 현미밥으로 체중감량다이어트에도 최고라 하질 않던가.
그 풍성한 영양소에도 쌀 소비량이 자꾸만 줄어드는 게 슬프지만 쌀의 돌파구로 쌀국수, 쌀 과자, 쌀 빵, 쌀 술, 쌀엿, 쌀 한과, 쌀 호떡, 쌀 꽈배기, 쌀 도너츠, 쌀 튀밥 등등 쌀의 무한변신이 이어지고 있다.
쌀은 그 어떤 재료를 만나도 화합을 잘 하니 명품의 콜라보요 퓨전이다.
저 김밥의 무궁한 황금 레시피와 스킬을 보라. 삼각김밥, 꼬마김밥, 충무김밥, 고봉민김밥은 수시로 먹어서 잘 알지만, 뉴참치햄샐러드김밥, 명가바싹불고기김밥, 꽈리고추견과류김밥, 부추베이컨김밥, 돈까스크림치즈김밥, 떡갈비참치김밥, 매콤제육김밥 등은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이제는 전투식량이 아니더라도, 밥솥 없이 봉지에 물만 부으면 즉석 밥이 되는 불닭볶음밥이 있고 해물볶음밥도 있다. 밥 위에 자장을 올리면 자장밥이 되고, 밥 위에 오징어를 올리면 오징어덮밥이 된다.
오늘도 TV를 틀면 온통 맛집으로 요란하다.
누가 뭐래도 산다는 것은 먹는 것인가 보다.
대학병원이다. 주렁주렁 호스를 달고 코로 밥을 먹고 코로 물을 마시는 사람들. 금식 팻말을 달고 밥 먹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 밥 오는 때를 기다리는 이 시간은 정말이지 어느 애인을 기다리는 시간이 이보다 애절할까. 죽을 먹다가 먹다가 밥을 먹는 날은 하늘이 처음 열리는 날이다. 아무리 좋은 수술이 있어도 명약이 있어도 밥을 먹기 위한 준비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먹고 먹히는 슬픈 먹이사슬이 있어도, 길게 줄을 서고 취사 선택의 즐거움이 있는 먹거리가 있어 지구가 공존을 하고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닐는지.
이제 쌀밥과 보리밥으로는 경쟁이 되지 않으며 빈부를 거론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화려한 전치사가 있어도 맨 끝에 ‘밥’자가 붙는 밥이 보약이라는 것과 금수저 은수저가 있어도 밥숟가락을 놓으면 죽는다는 것뿐이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가장 위대한 가치는 사랑이 아닐까. 그 사랑의 대명사가 어머니이고, 오늘 저녁도 밥을 짓는 어머니는 하늘이 보낸 천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밥, 생명의 끼니인 그 영원한 이름을 사랑하노라.
밥이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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