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2월은 3월의 큰 변화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달이다. 줄지어 졸업식으로 이어지고 곳곳에서 인사이동이 발표되며, 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갈 준비를 갖춘다. 백화점에는 교복을 벗은 사회의 초년병들이 사복을 사며 봄을 재촉한다.  
7학년 8학년 연이어 가도 좋을 것을 굳이 마디지어 졸업식을 하고 입학식을 하면서 새롭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보직을 바꿔주고, 학년을 올리거나 낮춰 담임을 주고, 장소를 바꿔 일해 보라는 명을 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누구보다 형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가치를 알고 있기에 이미 생겨진 형식을 그다지 밀어내지 않고 현실에 맞게 형식을 조율하며 치러낸다. 그러자니 아이들의 결혼식 때도 젊은이들이 다소 불만스러웠을 것이고 이번에 내가 칠순 잔치를 치르면서도 견해의 차이를 느끼기는 했다. 그러나 나는 충분한 가치를 인정하고 능력껏 준비해 치렀다.
자녀의 결혼식을 치르면서도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형식이 간단하면 마디를 짓고 지나가는 과정의 깊은 뜻을 음미하기 어렵다. 편리하면 감사도 편리하게 빨리 사라진다. 마음에 담길 게 없다. 놀랍게도 매 단계마다 의미가 깊고 키워낸 부모로서 그 의미를 새겨보고 음미하며 기르면서 든 정을 서서히 한꺼풀씩 벗겨내는 장치로 형식이 짜여있다. 본질을 알고 대치하면서 치르면 간소해도 의미가 새겨진다.
그처럼 모든 졸업식에는 조금씩 의미의 깊이가 다르지만 새길 내용들이 깃들어 있다. 골머리를 앓던 일들도 물러가고 나의 젊음도 사위어가는데 ‘젊음의 졸업식’이 필요했다. 나에게 이제 그만 긴장하고 조금 느슨하게 살아도 좋다는 말을 잔치란 형식으로 전하고 싶었다. 나도 사는 것에 비해 나이가 들어간다고 행사로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생의 굵은 마디를 짓기로 작정했다.
최근 우리 부부는 명화 한 장을 거실에 걸고 싶어 했다. 그 명화는 바로 가족사진이다. 행사를 마치면 자동으로 해결될 것 같아 얼굴이 험해지기 전에 사진을 한 장 얻으려는 속셈도 깊게 끼어있었다.
게다가 고향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 남편에게 흩어져 사는 동기간들의 3대를 불러다 밥을 나눠 먹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한 보람이라 여겨져 진행하기로 했다. 장소를 결정해주고 선물 개수와 품목을 정해주고 아들과 딸이 거들 영역을 나누고 보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준비하는 도중에 이미 나는 받을 상을 다 받았다. 자상한 딸이 나의 한 생을 동영상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지쳐가는 나에게 제가 앨범을 뒤져 제 심미안으로 골라서 제작하고 내 신간을 다 읽었다고 하니 감사하기 그지없다.
예전 같으면 식순에 따라 소개말이 있는데 양가 3대가 모이니 80명이 됐어도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저마다 가족마다 늘어나고 늘어나고 또 늘어난다는 것을 내 동영상의 테마로 삼아 편집했다. 모두가 자기 투사가 일어나도록 곳곳에 그들의 표정을 끼어넣었다. 한 사람의 잔치가 아니라 각자의 시절로 퇴행해 자신의 역사를 더듬는 시간이 됐다. 어린 손자손녀들이 한복을 입고 잔치의 꽃이 돼준다. 식장에 웃음을 피워내고 재롱잔치를 벌이는 것도 잔칫날이 아니면 피어나지 않을 꽃이다. 
나와 남편은 먹을거리 선물과 함께 읽을 거리 책 한 권씩을 선물로 마련했다. 행사의 맛은 과정에서 다 취하고 행사 당일에는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살아낸 세월을 공유했다. 가정마다 새로 태어난 아이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봐주고, 고생했다는 마음을 눈빛으로 나눴다.
행사 중 색소폰을 불어 축하해준 제낭에게 박수가 터지자 외손녀가 “오늘은 할머니가 주인공인데…”하며 박수가 새는 것에 대해 볼멘소리를 했다. 아마도 제 엄마가 친구들과 생일잔치를 할 때 주인공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집중하라는 뜻으로 그렇게 교육을 한 모양이다. 잔치가 아니었으면 그 아이의 이렇게 자란 면모도 발견하지 못할 뻔 했다. 할머니가 박수를 받지 않고 다른 사람이 받는 게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조차도 고맙고 사랑스럽다.
경비며 마련한 선물이 단 한 개의 오차도 없이 똑 떨어졌으니 후회나 미련이없다. 내 딸의 메시지에 “엄마 잘 살으셨네요” 그렇게 적혀 왔다.
그 말을 선물로 알고 달게 받는다. 빛나는 ‘젊음 졸업식’은 끝나고 발코니에는 꽃들이 서서히 시들어간다. 어느새 책상에는 환하게 웃으며 찍힌 가족사진이 앨범이돼 도착했다. 대형 사진을 걸기에는 아직 일러서 밤마다 사진을 보며 2월을 보낸다. 의식에 날개가 돋는다. 70인생에 가족사진으로 낙관을 찍었으니 봄에는 마음이 시키는대로 날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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