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초 록  여행객원기자


충남 천안은 3·1독립 만세 운동을 드높이 외쳤던, 유관순 열사의 고향이다. 예부터 삼남(三南:충청, 전라, 경상) 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 중심지이기도 했다. 천안(天安-‘天下大安’의 줄임말)이란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아래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이곳이 평안해야 세상이 태평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천안 하면 유관순이 먼저 떠오른다. 유관순은 ‘조선의 잔 다르크’라 불릴 정도로 우리 민족의 자랑이다. 때는 3월이 아닌가. 유관순은 3월의 아이콘이다.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유적지 순례는 그래서 더 각별하다. 유관순 열사기념관, 유관순 생가, 추모각, 동상, 아우내장터, 초혼묘, 봉화대(탑), 매봉교회 등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열사의 유적지는 일제 강점기의 항일 투쟁사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산 역사교육장이다.

“만국이 평화를 주장하는 금일을 당하야(…) 우리도 비록 규중에 생활하여 지식이 몽매하고 신체가 연약한 아녀자 무리나 국민 됨은 일반이요 양심은 한가지라(…)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 없으며 두려워할 것도 없도다. 살아서 독립기(獨立旗) 하에 활발한 신국민이 되어 보고 죽어서 구천지하에 이러한 여러 선생을 좇아 수괴(羞愧)함이 없이 즐겁게 모시는 것이 우리의 제일의무가 아닌가. 간장에서 솟는 눈물과 충곡(衷曲)에서 나오는 단심으로써 우리 사랑하는 대한 동포에게 엎드려 고하노니 동포! 동포여! 때는 두 번 이르지 아니하고 일은 지나면 못하나니 속히 분발할지어다.” 
-3·1운동 시기 발표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중에서-

 

 

‘대한독립여자선언서’에서 보듯 3·1운동은 여성이 주축이 돼 벌인 민족운동이다. 그 중심에 유관순이 있다. 김인종, 김숙경 등 만주지역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발표한 이 선언서는 우리나라를 강점한 일제를 규탄하고 독립운동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적지 안내도를 들고 한옥 양식의 유관순 열사기념관에 들어가 본다. 열사의 출생과 성장과정, 3·1 만세운동 이미지 상징물, 아우내장터의 독립만세운동, 유 열사의 수형기록표, 재판기록문, 서대문 형무소의 벽관, 대한독립선언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태극기 목각판, 옥중투쟁과 순국, 영상실, 타임캡슐 등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다.
기념관에서 나와 유 열사의 영정이 있는 추모각에서 잠시 묵념에 잠긴다. 유 열사의 애국정신을 마음에 새기고 방명록에 흔적을 남긴다. 추모각 옆으로 난 매봉산 기슭을 따라 올라간다. 500m쯤 오르니 그의 영혼을 모신 초혼묘(招魂墓)가 보인다. 여기서 돌계단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열사에게 바치는 헌시(獻詩)가 새겨진 돌비가 서 있고 조금 더 올라가니 당시(1919년 3월 31일 밤(4월 1일))의 거사를 알렸던 봉화대와 봉화탑이 서 있다. 횃불을 높이 들고 떨쳐 일어났던 3·1만세운동은 이렇게 우리 앞에 어렴풋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유관순 열사의 순국일인 9월 28일엔 추모각에서 추모제가 거행된다. 
생가는 봉화대에서 매봉산 허리를 돌아 조금 내려가면 있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만세운동 당시 일본군들이 가옥과 헛간을 불태워 빈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던 것을 다시 복원했다. 생가 안방에는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논의하던 모습이, 건넌방에는 태극기 제작하는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는데 문득 숙연해진다. 나무 울타리와 초가로 단장된 생가 옆에는 기념비가 서 있고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가 있다.

 

독립운동에 몸 바친 분들

천안에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독립운동에 몸 바친 이들이 여럿 있다. 신간회에 가입해 항일 민족운동을 전개한 유석(維石) 조병옥 선생은 1929년 광주학생 운동 배후 조종 혐의로 3년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 수립 후 대통령 특사, 유엔 한국 대표, 6·25 동란 때에는 내무부장관을 지냈으며 독립운동가로 정치가로 의회 민주주의를 펼치려다 병세가 악화돼 미국에서 숨을 거뒀다. 유관순 생가에서 2km 거리에 선생이 태어난 옛집(생가)이 있다.
 목천읍 동리에서 태어난 석오(石吾) 이동녕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임시의정원 초대의장, 국무총리, 국무위원, 주석 등의 중책을 맡았다. 조국광복의 염원을 담아 즐겨섰던 대의(大義)라는 글과 선생께서 독립을 향한 강한 의지로 자주 인용했던 ‘산류천석(山溜穿石)’ ‘광명(光明)’은 오늘날까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생가 옆의 기념관에서 선생의 삶과 사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선생의 친필 휘호와 친필서신, 임시정부 문서, 초상화, 사진 같은 귀중한 유품이 눈길을 끈다.
 나라를 세운 독립운동의 정신을 좀 더 느껴보고 싶다면 독립기념관으로 가면 된다. 선사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의 역사를 시대별, 주제별로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5천년 우리 겨레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7개의 전시관과 겨레의 집, 겨레의 탑, 광개토대왕릉비, 입체영상관, 독립군체험학교, 시어록비, 추모의 자리, 태극기한마당, 통일염원의 동산, 밀레니엄숲,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 등을 차례로 돌아보노라면 나라사랑의 마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자연과 역사를 함께

▲천안삼거리공원=우리 민요 <흥타령>에 나오는 천안삼거리(천안시 삼룡동)는 조선시대, 지방에서 서울로 갈 때 한번은 거쳐야 했던 길목이었다. 능수버들로 둘러싸인 커다란 공원은 쉼터 구실을 톡톡히 한다. 이파리를 다 떨구어 버린 휘늘어진 능수버들 주위로 아담한 연못과 정자(현소각, 영남루)가 서 있고, 공원 들머리에 세워놓은 ‘흥타령(興打令)비’는 지나가는 길손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광덕사(산)와 호두마을=천안 시내에서 서남쪽 광덕면 소재지로 가면 신라 선덕여왕 때(637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광덕사가 나온다. 광덕면은 호두 주산지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 호두 생산량의 50%가 이곳에서 난다. 산자락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호두나무는 이곳이 호두 산지임을 알려준다. 광덕사는 호두나무가 처음 심어진 곳이다. 보화루 앞에 서 있는 호두나무는 높이 20m, 둘레 4m, 수령 400년을 헤아린다.

▲태조산=천안 남서쪽에 광덕산이 있다면 북서쪽에는 고려 태조가 머물렀다는 태조산이 있다. 태조가 산신제를 지냈다는 제단의 흔적을 비롯해 동양 최대의 아미타여래청동좌불이 있는 각원사는 절집 특유의 고즈넉함이 물씬하다. 부처님 진신사리와 팔만대장경을 둔 청동좌불상은 무게만 60톤에 달한다.
                    
여행 TIP

가는 길
유관순 사적지: 천안논산고속도로나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남천안 나들목 또는 목천 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천안역, 천안종합터미널에서 400번대 병천 방면 시내버스 운행. 기차편: 경부선, 호남선, 장항선-천안역, 고속전철 천안아산역. 이동녕기념관: 경부고속도로 목천나들목-목천읍사무소-이동녕생가. 천안역(터미널)에서 400, 402번 버스 이용-목천교 앞 동리 입구 하차.
맛 집
독립운동의 현장인 아우내는 예로부터 장터가 크게 발달했다. 아우내장터의 명물은 병천 순대. 아우내한방순대(041-555-9833), 쌍둥이네순대(041-567-8777), 부부순대집(041-555-1912)에서 입에 착 달라붙는 담백한 순대를 맛볼 수 있다. 순대국밥, 병천순대, 모듬순대, 순대곱창전골이 주 메뉴다.
숙 박
천안시내의 모텔, 호텔을 이용하거나 병천면 소재지에 아우내펜션(041-522-9999), 병천3·1펜션(010-9040-3096) 등이 있고 광덕사 쪽에도 마메종펜션(010-8801-8458)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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