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시간대 휴게시간 집중-안전 취약 우려

경비원 A씨는 밤 10시부터 1시간 30분가량 순찰을 돈다. 행동거지가 수상한 사람이 돌아다니지 않는지, 헤매는 취객은 없는지, 인적이 드문 놀이터나 벤치에서 술, 담배를 하는 청소년들이 없는지 등을 살핀다. 그 중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업무는 단연 주차단속이다. 순찰구역 안에 주차된 모든 차들의 앞 유리에 손전등을 비춰가며 아파트의 주차스티커가 붙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새벽에 들어오는 차들은 2중 주차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외부차량 단속은 중요한 일과다. 차량을 살피던 A씨는 후문 출입구 근처에 세워진 외부차량을 발견했다. 앞 유리엔 방문증도 놓여 있지 않았다. 잠시 망설인 그는 들고 있던 파일에서 노란색 경고스티커를 꺼내 조수석 유리창에 붙이고 돌아섰다.
밤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는 야간 휴게시간. 순찰을 마친 A씨는 간단히 양치와 세수를 한 후 시간이 되자 조명을 끄고, 신발을 벗어 다리를 책상에 올린 채 잠이 들었다. 휴게실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았으므로 옷을 갈아입을 형편은 못 됐다.
쾅! 쾅! 쾅! 천둥소리에 깜짝 놀란 A씨가 반사적으로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1~2초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밖에서 문을 차는 소리였다. 시계바늘은 새벽 3시를 지나고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A씨는 옷소매를 붙잡힌 채 밖으로 끌려 나왔다. 문턱에 발이 걸려 하마터면 고꾸라질 뻔했다. 40대로 보이는 남자 두 사람에게서 진한 술냄새가 풍겼다.
그들은 몇 시간 전 주차금지 스티커를 붙인 차를 가리키며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앞유리에 휴대폰번호가 있는데, 왜 전화를 걸지도 않고 함부로 손님 차에 스티커를 붙였느냐”고 낯익은 입주민이 따져 물었다. A씨는 “외부차량은 미리 방문증을 끊어야 하며, 순찰도중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할 순 없는 일”이라 설명하고 “지금은 휴게시간이니 따질 게 있으면 아침에 다시 오라”고 했지만, 그들은 더욱 흥분하며 “당장 관리사무소장과 입주자대표회장을 불러오라”고 고함을 쳤다.
일이 커질 것을 우려한 A씨는 결국, 한참동안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그가 붙인 스티커를 스스로 깨끗하게 제거해 줬다. 만취한 두 사람은 그제야 비틀거리며 돌아갔고, 어느덧 여명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A씨의 휴게시간은 그것으로 마감됐다.
입주민 B씨는 요즘 야근하는 날이 잦다. 그가 근무하는 세무사 사무실에 일감이 폭주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밤 늦게 귀가한 그가 늦은 저녁식사를 마친 후 택배물건을 찾으러 갔다. 경비실 불이 꺼져 있어 문을 두드리니 경비원이 물건을 내주며 “다음부턴 밤 12시 이전에 물건을 찾으러 오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내심 불쾌한 마음이 들었지만 참았다. 심야에 경비휴게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B씨는 이제 밤 늦은 시간엔 경비실 방문을 포기한다.
많은 눈이 내린 지난달 20일 새벽. 경비원 C씨는 스스로 휴게시간을 반납했다. 방송뉴스에선 전날 밤부터 폭설이 내릴 거라고 잔뜩 겁을 주고 있었다. 제설장비를 꺼내 놓고 ‘부디 일기예보가 틀리길…’ 기도하며 휴식을 취하려 했지만, 30분도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는 밤새도록 눈을 맞으며 빗자루로 쓸고 염화칼슘을 뿌리러 다녀야 했다. 작업은 교대근무자가 올 때까지 계속됐다. 그의 몸이 눈과 땀으로 흥건해졌다.
휴게시간에 일 한 것에 대해 억울하지 않은지 묻자 “입주민들에게 게으르단 얘길 듣는 것 보단 낫다”며 “이런 날은 안에 앉아 있는 게 바늘방석보다 불편하다”고 웃어 보인다.
때늦은 겨울비가 봄을 재촉하며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16일 밤부터 17일 새벽 사이. 취재를 위해 찾아간 서울 인천 경기지역 아파트 경비실 불이 대부분 꺼져 있다. 손잡이를 돌려 봤지만 문 역시 굳게 잠겨 있다. 커다란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점심2시간, 저녁 1시간,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휴게시간입니다’란 내용이었다. 24시간 근무 중 무려 3분의 1이 넘는 9시간이 휴게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아파트가 6시간에서 8시간 휴게시간을 규정하고 있다. 간혹 위 아파트처럼 9시간 이상 주는 곳도 볼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근무하는 경비원들의 건강을 생각해 피로를 줄여준다는 취지라면 좋겠지만, 그건 아닌 듯 보인다. 앞의 사례들처럼 ‘쉬는 게 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휴게시간은 특히 50%의 가산수당이 붙는 심야시간대에 집중돼 있었다.
어떤 아파트는 낮 시간에 외부차량 통제를 위해 내려져 있던 정후문의 차량 차단봉이 아예 올려져 있기도 했다. 휴게시간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 더욱 경계해야 할 심야시간에 외부차량 통제를 포기한 것이다.

이른바 ‘명품’이라 불리는 중대형 고급 아파트 단지는 새벽까지 경비원이 정상 근무하는 경우를 볼 수 있었지만, 중소형대 서민아파트의 경비실은 대부분 불이 꺼지고 문도 잠겨 있었다. 기술직원도 야근을 하지만 그들의 임무는 기계 및 전기시설 관리에 있으므로 기전실 밖으로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부슬비가 내리는 심야의 아파트 단지는 고요로 가득한 적막강산을 넘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수천 명의 입주민이 잠들어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수문장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경비실은 가로등 불빛조차 들지 않아 더욱 어두웠다.
심야시간의 경비공백 현상은 최근 2~3년 사이에 급증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오르고 감시.단속적 근로자에게 적용되던 ‘최저임금 적용 예외’가 철폐돼 100% 지급하게 되면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마음에 임금을 주지 않는 휴게시간을 더욱 늘린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6,470원. 50%의 임금이 가산되는 야간 근로시간(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을 감안하면 휴게시간의 많고 적음에 따라 월 급여가 20만~30만원까지 차이날 수 있다.
이로 인해 경비원들이 휴게시간이 적은 아파트로 이직하려는 러시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 충분히 쉬어가며 일해야 할 고령의 24시간 노동자들이 오히려 덜 쉬게 하는 곳을 선호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경비원들은 “24시간 매여 있는 몸이라 덜 쉬더라도 급여 센 곳이 좋다”며 “어차피 휴게시간은 허울뿐”이라고 하소연한다.
휴게시간을 늘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많은 경비원들이 일터에서 쫓겨났고, 어떤 단지는 경비감원 문제로 입주민 의견이 양분돼 홍역을 앓고 있다.
여기에 진짜 중요한 문제는 ‘안전’이다. 이러다가 혹시 강절도 등 강력사건이 일어나면 입주민의 안전은 괜찮은 걸까?
화재 등의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신속한 초동대처가 가능하긴 한 걸까?
평화롭게 잠든 아파트 단지에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보인다.
재앙은 아무도 모르게 연기처럼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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