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영 여행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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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봉도

한껏 마시는 바다 냄새와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꽃잎처럼 피다.
구름에 가린 노을이 좋다. 선명하지 않은 색체로 해가 넘어가고 하늘은 그냥 어둠으로 바다에 빠진다. 북적이지 않는 겨울포구의 갈매기가 한가히 외롭다. 외로운 것은 내가 외롭고 겨울바다도 그렇다.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 여유가 있다는 것. 내 안의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들이 겨울바다에 있다. 바다는 깊은 상실을 메우듯 철썩이며 해가 지고 포구의 불빛들은 바다 위에 눕는다.

맨 먼저 /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 그리고 워럭 달려든 파도에 / 귀를 찢기고
그래도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 그저 바다만의 세상 하면서 /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 베인 적은 없었다 /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 찢긴 적은 없었다.

▲ 궁평항

인적 없는 산길과 작은 동네들을 사이로 바다가 더 가까운 추자도. 펄떡 뛰는 힘찬 방어의 색깔이 제주의 겨울바다와 닮아 뱃고동 소리처럼 여운으로 남는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라는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도 겨울바다일까. 소주 한잔에 기분 좋을만한 추위가 볼을 문지른다. 아니 소주 한 잔보다 한껏 마신 바다냄새에 기분이 좋아 하늘도 바다도 희뿌연 안개처럼 잠긴 것을 본다.

▲ 목섬

바다가 나를 본다.

길은 때론 바다로 이어지고 물은 길을 지우듯 스며든다. 서해의 잔잔한 모래갯벌에는 이른 봄 노루귀꽃잎 같은 파도의 흔적들이 햇살에 눕는다. 물이 빠진 목섬에는 끝없는 길이 났다. 길은 바다로 가고 사람들도 바다로 걸어간다. 저 멀리 섬들은 잠겼다 다시 희뿌옇게 일어나곤 한다. 동해 영금정 아래 고운모래를 끌어 올리고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는 바다길목에 하얀 포말로 꽃잎처럼 핀다. 다랭이논들을 사이에 두고 남해 바다의 햇살은 눈부신 노을을 그리며 훈풍의 봄을 기다리니 동백꽃들이 겨우내 불을 지핀 덕이다.

겨울바다에 가는 것은 / 바로 나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고독을 만나러 가는 것이고 / 자유를 느끼기 위해 가는 것이다
동굴 속에 머물러 지내다가  / 푸른 하늘을 보러 가는 것이다
겨울 바다에 가는 것은 / 갈매기 따라 날고 싶기 때문이다

 

▲ 동명항

잘박거리는 모래 위에 삶이 있다. 겨울바다를 찾는 사람들에게 간결한 답을 주는 양병우의 마지막 시 한 구절은 “시린 바닷바람 가슴 가득히 마셔 나를 씻어내고 싶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겨울바다에서는 절벽으로 치닫는 파도에서도 시원함을 느낀다. 내 안의 상심을 깨끗이 밀어내는 소리들과 새싹이 껍질 속에서 움터오듯 바다가 다시 생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겨울바다이다. 연인들은 사랑의 밀어들을 더 소근 거린다. 찬바람에도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겨울바다를 따뜻하게 한다. 바다가 잔잔한 파도로 이어주는 길을 만들기 때문이다. 짙은 동해의 바다와 남해의 하늘이 바다에 잠기고 서해의 옅은 구름은 겨울과 봄의 사잇 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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