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2월에는 약간의 호기심과 불안이 깃들어 있다. 학동기를 마친 사람들은 어느만큼 홀가분함을 느끼겠지만 이내 다른 걱정거리가 그 자리를 메꾸고 만다.  평생 살아도 온전히 홀가분한 날은 아마도 없으리란 생각을 하지만 그것을 기본으로 알고 지내면 ‘이 정도면…’하는 안도의 날들도 고기에 낀 기름기처럼 고소하게 맞을 수가 있다. 2월이 되면 교직자나 성직자들의 이동이 있는 달이고 학생들은 새 선생님을 맞는 시기이므로 사회적 분위기상 다양한 퇴행 감정을 수반하게도 된다.
아이들이 장성해 다 떠나고 다시 제 아이들이 본격적인 학동기에 접어드는데 나는 해줄 말이 궁하다. 우선 아이의 엄마가 됐을 때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교육의 지도를 갖고 싶어했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말을 배우고 행동패턴을 익히면서 성장하다가 엄마의 무릎학교를 졸업하기가 무섭게 글을 배우고 익혀서 일상을 표현하는 기능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최대한 잘 전달할 수 있는 기능인 말과 글은 현대인이 갖출수록 사회생활에 유익한 기능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문학인이 아니라도 말과 글의 기능을 내 주기능인 듯 사용하면서 살아가야만 일터에서 어려움에 봉착하더라도 두려움 없이 헤쳐나갈 수가 있다.
지금 나는 50대 초반에서 79세에 이르는 어른들을 상대로 수필지도를 하고 있다. 유명한 작가가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말과 글을 원활하게 사용하면서 삶을 기름지게 하기 위한 교실이다. 3년 동안 한번도 눈을 붉힐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성숙된 신앙인들 사이에서 표현하는 방법을 지도하고 있다. 삶터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사건과 관심거리를 전방위로 확대해서 관찰하고 성찰하다가보면 생각이나 감정의 쓰레기가 은연 중에 쌓일 것이다. 이를 꺼내서 재활용분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분리수거용봉투격인 수필에 담아 내보내면서 삶을 정리하는 것이다. 집안 곳곳에 박힌 물건들도 꺼내놓지 않으면 없는 듯 잊고 산다. 수필교실이란 마당에 말과 글로 자기 속을 꺼내 놓고 분리수거를 마친 다음에 비닐봉투에 담는 작업이 창작작업이다. 표준봉투를 사용해야 하듯 글에도 적용해야 할 문학적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시간이나 정성을 대가로 내놓아야만 성장이 가능하다. 나는 그러한 내용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를 수시로 강조한다. 모든 기능은 반복할 때 급성장한다.
언제 우리가 무엇을 바랐던가. 어디서 우리 수업을 들었을까. 때에 이르니 방송매체에서 우리에게 인터뷰 요청이 와서 짧지만 응해봤다. 새로운 일에는 맑은 거울도 따라오니까 조심스럽게 응했다. 예기치 않은 자신을 만나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프로그램을 대했다. 나는 모든 회원들을 통해서 놀라운 기능을 발견했다.
회원들이 진솔하고 간결하게 자신을 표현해줘서 리포터가 놀랐다.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더 수월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들을 통해서 영혼의 자유로움을 볼 수 있었다. 리포터도 회원처럼 하나가 돼 웃고 마이크를 고루 대주면서 분위기가 참 좋게 일을 치르고 떠났다.
바로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방송을 듣게 됐다. 다양한 이야기를 편집해 들려준 그 자체가 바로 살아있는 수필수업임을 눈치챘을까. 수많은 정보를 분리하고 정리하는 과정 자체가 수필 문학의 여정이기도 하다. 
현장감 나는 내용이 우선이라, 새로 온 회원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듣는 동안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렴풋이 쓰고 싶다는 꿈만 꾸다가 오신 분들이 아니라 문학적 뿌리를 가지고 살고 있는 분들이었다.
말은 그냥 흘러 나오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지식과 정보, 느낌이 합성돼 재창조돼 흘러 나오는 것임을 확증해줬다. 다양한 경험이 글로 피어날 때면 무궁무진 펼쳐질 것이다.
뭐든 포기하고 흥미를 보이지 않는 사람보다는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자신이 얼마나 확대될 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진실쪽에 화살표를 그어놓고 본질에 충성하면서 앞만 보고 가는 길, 그 길이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때에 이르면 결과는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전반부의 삶이 채우는 삶이라면 후반부의 삶은 말과 글을 통해 비우는 삶이어야 자유와 여유가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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