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나는 가끔 앨범을 뒤적인다.
특히나 해가 바뀌는 요즈음이면 서가의 총 정리와 더불어 불필요한 것들을 한꺼번에 치운다.
매년 치우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으니 사진이다. 버릴까 말까를 한참 망설이다 버리지 못한다. 학창시절이거나 신혼시절이거나 아이들과의 흑백사진을 보면 그리움의 원근법인 추억이 새롭다.
키 작은 할머니와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만나는 것도 사진이다.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거기에 없다.
같은 세상을 살아오면서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회한들을 간직한 사진. 순간이 만들어 놓은 그리움이 있고, 찰나가 만들어 놓은 영원함이 있다. 아직도 늙지 않은 아내가 거기에 있고, 아직도 자라지 않은 아이들이 거기에 있다.
바라만 보아도 좋은 사진은 내 인생의 즐거운 상여금이요, 아름다운 보너스다.
세월이 흐를수록 새로운 추억이 되고 새로운 향기가 되는 것.
행복이라는 생소한 단어조차 자꾸 그리움이 되는 저 흑백사진, 나도 이제 많이 늙었나보다. 강물처럼 불어나던 가난도 추억의 점령군이 되어, 잘 삭은 식혜 알처럼 동동 떠다닌다. 
진흙에 묻힌 침향은 천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향기를 낸다고 했지.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고 여행을 갈 때마다 찍은 사진들.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는 그 더운 앙코르와트가 좋다고, 하롱베이가 좋다고 지금도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그 찰나의 사진 속에는 장가계의 절경이 아른거리고, 온천도시의 벳부가 김이 모락모락 난다.
사시사철 피어 있는 무안의 연꽃 백련지, 사시사철 흰 눈에 덮인 설악의 흔들바위, 트리갭의 샘물처럼 영생으로 있는 사진이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9번처럼 백마고지의 위령비 앞에서는 차마 바로 볼 수 없어서 선글라스를 썼었지.
청풍호의 자드락길, 인제의 자작나무 숲길,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은 길이라고만 할 수 없다고 사진은 말한다.
맛보다는 풍경에 취하는 보성차밭, 맛보다는 소리에 놀라는 소래포구가 거기에 있다.
단종의 눈물이 강물처럼 흐르는 영월의 청령포,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해남의 땅끝마을, 육지 속의 섬마을 회룡포, 대관령의 양떼목장이 평화롭게 거기에 있다.
마이산 은수사의 역 고드름, 담양의 1경이라는 도담삼봉, 아자방의 칠불사,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는 실상사의 백장암이 앨범을 뒤적이면 다가오는 추억이다.
따뜻한 순간을 담아두는 사진은 광학적 방법으로 감광 재료 면에 박아낸 물체의 영상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만으로는 부족하다.
쇼팽의 발라드가 있고, 드뷔시의 달빛이 흐르는 사진과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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