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우리 민족은 공동체의식이 강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함께 자고, 함께 먹고, 함께 노동하며, 함께 즐기는 생활을 해왔다. 그렇다보니 개인의 사생활 개념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생활에 서구문화가 유입되면서 급격한 변화가 왔다. 이젠 아이가 유치원에만 들어가도 따로 방을 마련해 준다. 중학생쯤 되면 부모의 침실에 함부로 출입하지 않고, 부모 역시 아이 방을 들어갈 때 노크를 해야 한다. 빈방을 청소할 때도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않으면 허락 없이 자기 공간을 침범했다고 기분 나빠할 정도다. 엄마 아빠의 직장생활과 아이의 학교·학원생활이 제각각이어서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밥 먹는 일이 드물다. 온 가족이라고 해봐야 고작 서너 명인데도 그렇다.
이런 변화가 너무 빠르다 보니 고유의 생활방식 대 서구식 라이프스타일의 충돌이 빈번하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 볼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명절을 기다리지만, 아이들에게 명절은 어른들로부터 두둑하게 용돈을 받는 날이어서 반가울 뿐이다. 중간에 선 엄마, 아빠는 어떻게 하면 위와 아래를 끈끈하게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이런 혼돈은 공동주택에서도 벌어진다. 수천 년 동안 모양도 제각각이며 크고 작은 마당이 딸린 단층집-집안에 마당이 없어도 바깥 공터가 모두 ‘우리’마당-에 살던 사람들이 불과 수십 년 만에 대부분 모양이 똑같은 아파트로 들어왔다. 예전엔 ‘내 게 네 것, 네 것도 내 것’이었지만 지금은 ‘내 것만 내 것’이다. 남의 것을 함부로 손댔다간 파렴치한으로 몰리거나 자칫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신구 간의 사고방식이 아파트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내 집에서 아이들이 좀 뛰어다니는 게 무슨 상관이냐”는 구식 생각과 “이웃에게 불편을 끼쳐선 안된다”는 신식 사고가 부딪치고, “1층에 사는 사람이 왜 승강기 유지비를 내느냐”는 사적 견해와 “공유재산이므로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공적 담론이 충돌한다.
경비원 수 줄이는 문제로 입주민 간 의견이 갈리고, 전후임 입주자대표회의 간 오해와 분쟁이 소송으로 번지기도 한다. 입대의가 둘이어서 관리비를 따로 징수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도 목격된다.
심한 경우 모든 가구와 입주민이 양측으로 나뉘어 격렬한 싸움을 벌이거나, 큰 파벌에서 작은 파벌로까지 사분오열돼 누구에게도 대표권이 없고,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쯤 되면 관리사무소장이나 위탁관리회사도 힘을 쓸 수 없어 관리업무 전체가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여기저기서 물이 새고, 전선이 끊기고, 틈이 벌어져도 책임지고 나설 사람이 없으니 피해는 모든 입주민의 몫이 된다.
모두가 ‘내 집이니 내 맘대로 하겠다’는 극단적 이기주의로부터 비롯된 비극이다.
이런 외통수를 타개하기 위해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민간아파트에 대한 ‘공공위탁’ 사업을 시작했다. <관련기사 1면>
갈등이 심한 아파트 입주민들의 요청을 받아 공적 관리사무소장을 파견하고 최대 2년간 직접 관리하는 방식이다.
유례가 없는 일이다보니 아파트 관리 이해당사자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현장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며 의견이 분분하다.
입대의 입장에선 대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것에 대해, 관리사무소장의 입장에선 공적 소장 배치의 객관성과 합리성 및 신분보장에 대해, 위탁관리회사의 입장에선 위탁관리업 영역 침해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서울시의 ‘공공위탁’사업은 극심한 혼란과 갈등에 빠진 극소수 단지에만 적용될 문제이므로 지나친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분규단지에 대한 해법이 돼 성공적으로 정착할 것인지, 좀 지나면 흐지부지 실패작으로 사라질 것인지도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다만 원칙은 확실해야 한다. 모든 판단은 전체 입주민의 이익을 옹호하고 입주민의 입장에서 내려져야 한다. 일부 세력의 독단이-사적자치란 미명으로 포장돼-판치는 곳엔 분명 공공성을 가진 기관의 개입이 필요하다.
서울시의 실험이 카오스에 빠진 아파트에 획기적인 솔루션이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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