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결혼식장에 신랑 신부의 입장보다 먼저 양가의 어머니가 입장을 하여 화촉을 밝히는 그 순간은 손뼉이다.
결혼식장에 신랑 신부의 맞절보다 양가의 어머니가 먼저 맞절을 하는 그 순간은 감동이다.
순간이라는 그 찰나는 기다림을 전제로 한다.
기다림의 끝에 피어나는 꽃봉오리에 마지막 정성이 담긴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불을 밝히고 절을 하는 어머니의 기도는 영원이다.
결혼식장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 중의 하나이고 나는 박수를 제일 많이 친다.
순간이 아름답고 찰나가 아름다운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이랴.
빈 손 끝에서 비둘기가 날고 꽃이 피는 매직이야 그렇다 치고, 해가 뜨는 순간 해가 지는 순간, 연극이 시작되는 순간, 첫 책장을 넘기는 순간은 설렘이다.
아름다운 순간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수고와 기다림이 얼마나 길던가.
찰나를 위한 기다림은 고통을 수반한다. 일출의 그 장엄함을 위해 제야의 종이 그렇게 무겁게 울리고, 긴 밤은 그토록 어둡고 새벽바람은 그처럼 차가웠는지도 모른다.
신천지를 향해 산을 넘는 저 구름도 모진 바람 없이 어찌 산을 넘을 수 있을까. 순간순간이 만든 성공은 기다림이 베푼 자비이다.
대학의 합격통지서를 받아든 그 순간, 취업의 합격통지서를 받아든 그 순간,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아든 그 순간, 후보생이 임관식을 하는 그 순간, 각종 스포츠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그 순간은 보여줄 수 없는 지난 것들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요 전율인지도 모른다.
첫사랑 첫 손을 잡는 순간은 어느 블록버스터 영화가 이보다 더 짜릿할까.
오랜 투병 끝에 병원 문을 나서는 그 순간은 생존의 환희이자 삶의 희열이다.
부모와 자식의 끈을 이어주는 첫 아이를 낳은 그 순간, 그 환희를 잊지 않기 위해 우리들은 생일이라고 명명하며 죽을 때까지 기억한다.
기다리고 견디는 것이 모여 눈물보다 아름다운 순간의 미학이 되나보다.
마치 오랜 수행 끝에 얻은 깨달음이 찰나인 것처럼.
그러고 보니 모든 순간들의 찰나가 모여 꽃이 되고, 영화가 되고, 인생이 되고, 역사가 되는 갑다.
법당의 촛불이 켜지는 것도 순간, 등대의 불이 꺼지는 것도 순간이다. 너 밖에 들어올 수 없다는 첫 마음의 문을 여는 것도 순간, 너 때문에 못살겠다고 발걸음을 돌리는 것도 순간이다.
오라고 하지 않아도 오고, 가라고 하지 않아도 가는 게 세월이다.
기웃거리지도 머뭇거리지도 않는 시간 속에 발버둥치는 모든 순간들이 찬란한 서프라이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의 순간이 모여 마라톤이 되고 등산이 되니, 어느 순간인들 소중하지 않으랴. 
세상이 소란스럽고, 경제가 어렵고, 구석구석이 아우성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영악하고 사악하고 이기적인 생존경쟁이 삶의 발목을 칭칭 휘감아도 말이다.
세상은 진실보다 스캔들을 더 좋아하고, 이념이니 빈부니 갈등이 고함을 지르고, 반칙과 변칙 탈법과 편법도 함께 사는 공정사회라고 혈안이 되어도, 어느 순간인들 소중하지 않으랴.
강냉이가 뻥튀기가 되는 것도 순간, 참고 참았던 눈물이 나오는 것도 순간, 견디고 견뎠던 울분이 나오는 것도 순간이다.
그 어떤 수사적인 말씀이 있어도 순간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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